오늘 복음말씀은 보통 「돌아온 탕아의 비유」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보다는 「용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무한히 자비롭고 사랑이 충만하신 아버지」께 그 초점이 맞춰져 있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입니다.
아버지를 부친(父親)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친할 친, 어버이 친(親)」자는, 「누군가가 나무(木) 위에 서서(立) 무언가를 바라본다(見)」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가 달려가 그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모습」과 너무 흡사한 내용입니다. 자신이 아직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산을 미리 요구하여 그 몫을 챙겨가지고 나간 불효막심한 아들이지만 노심초사하시며 그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셨던 아버지, 불순종과 온갖 죄악으로 만신창이 된 상태이지만 그래도 회심하여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작은 아들을 한마디 원망이나 책임추궁하심 없이 온전한 자비와 사랑으로 끌어안으시며 잃었던 아들의 품위를 더 좋게 복구시켜 주시는 아버지는, 이렇듯 자식에게 좋고 친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께서 바로 우리의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작은 아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추하고 부정적인 면들을 보게 됩니다.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고 무례하고 방종-방탕한 모습, 제 힘으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함을 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에게서 참으로 「의로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늦게나마 자신의 한계-부족함을 깨닫고는 잘못을 반성하고 진리에 겸손되이 순종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문득, 요즈음 극심한 경제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 생각이 납니다. 물론 그분들이 집나갔던 작은 아들처럼 무언가 잘못을 했기 때문에 그런 고통을 당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만 「쥐엄나무 열매로도 배를 채우기 힘든」그래서 죽을 것만 같은 암담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오늘 복음의 작은 아들처럼 「하느님은 생명과 자비의 아버지이심」을 굳게 믿으며 그분께로 돌아가, 그분 안에서 더욱 힘을 내어 이 위기를 잘 극복하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도 남들보다는 조금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오늘 복음의 큰 아들 안에서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큰 아들은 외적으로 볼 때, 성실히 일하면서 아버지 집에 머물렀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왠지 그에게서 많은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외면적으로는 열심히 일하며 묵묵히 아버지께 순종한 사람 같지만 사실 그 안에는 온갖 불만과 불평이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회심하여 돌아온 동생에게 아버지께서 호의를 베푸시려고 하자, 드디어 그 쌓였던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종처럼 일한 나한테는 염소새끼 한 마리 주지 않더니 저 몹쓸 동생에게는!…」하며 그는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합니다. 아버지의 후한 처사에 불평/반항을 하며 아버지와 동생 모두를 거부합니다. 어쩌면 그는, 동생의 몫이 이미 떼어진 상태의 아버지 재산은 모두 자신의 것인지라, 자신의 것이 조금이라도 동생에게 나누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그러한 욕심에 그토록 어리석은 행동을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한 번의 실수로 큰 죄를 지었으나 회개하여 겸손해진 작은아들에 비해, 비록 큰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자기의 틀을 깨지 못하고 옹고집으로 불평-분노하고 인색하게 구는 큰 아들이 분명 더 못난 사람일 것입니다.
수원교구의 한 본당신자들이 자신의 월급에서 매월 1만 원씩을 성금하여 이웃의 실직자 가정들을 돕고 있다는 기사를 지난주 가톨릭신문에서 보았습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처럼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사랑과 마음의 나눔은 본의 아니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 땅의 작은 아들들」에게 결코 작지 않은 힘과 희망의 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어쭙지않은 글을 이 「복음생각」란에 올리면서 받는 원고료를 오늘부터는 그 실직자 가정을 위한 성금으로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큰 아들의 모습」을 정화시키는 한 좋은 도구(道具)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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