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오늘 복음 즉 「열매를 맺지 못해 잘릴 위기에 처해졌던 무화과나무」에 대한 말씀을 주제로 강론을 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미사를 시작하며 다음과 같이 「꾸며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 『방금 뉴스속보를 들었습니다. 지금 휴전선 부근의 상황이 좀 심상치가 않다고 합니다. 만약 전쟁이 난다면, 우리가 지금 드리는 이 미사가 어쩌면 「편한 마음」으로 봉헌하는 마지막 미사가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이 미사 중에 진심으로 통회하며 특별히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강론시간이 되어 강론을 시작하며 먼저, 그 뉴스속보가 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였음을 밝혔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분들이 성호를 그으셨고 또 환히 웃으시며 박수를 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모두다 안도의 숨을 내쉬시며 감사하는 것 같았습니다. 개중에는 그 사이에 벌써 집에 확인전화를 하고 오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특히 아들을 군대에 보내신 어머니들의 걱정과 놀람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우리들은 살만큼 살았으니까 지금 죽어도 별 한이 없지만, 우리 아이들은…」하시며 걱정들을 많이 하셨던 것입니다. 「조금 심한(?)」강론에 놀라신 분들께 죄송스런 감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쩌다 한번은 「쇼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다시금, 만약 위의 전쟁이야기가 지금 실제상황이라면 우리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지금 「못살겠다! 힘들어 죽겠다! 내 신세는 왜 이 모양인고!」 하던 것들이, 아마 다 「배부른 소리」로 여겨질 것입니다. 「아, 그래도 그때가 좋았는데…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며 후회를 할 것입니다. 많은 것이 지금과는 영 딴판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편한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고,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끌려갈 것이고, 터지는 폭탄과 불바다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갈 것이고, 전기도 물도 끊긴 상태에서 고통을 당해야 할 것이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아비규환을 이룰 것이고, 붙잡혀가 고문 받아 죽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여간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을 그런 혼란과 공포, 고통과 죽음의 세상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은, 우리가 겪게 될 수도 있는 전쟁의 그 아수라장에 비하면 분명 천국일 것입니다. 아무리 사는 것이 고달프고 걱정거리가 많고, 그래서 죽을 맛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3년 동안이나 열매를 맺지 못해 베어 버려질 뻔했던 무화과나무는 우리 인간들이고, 그리고 거름을 주고 돌보아 주면 열매를 맺을지도 모른다며 1년의 유예기간을 청하는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써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들, 그러나 그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는 아직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집행 유예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시간들은, 이미 죽었어야 할 인간에게 「마지막 심판」의 때까지 유보된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회심과 기도, 사랑 나눔의 기회인 것입니다. 이 유보된 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채워나갈 때 우리는 분명, 많은 열매를 맺어 영원히 사는 무화과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설마 설마 하면서 그냥 그렇게 별 회심 없이 이 세상을 살다가는, 분명 심판의 그날에 「잘라져나갈 무화과나무」의 처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된다면, 아니 오늘이 내게 있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이 된다면,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만약 전쟁이 나서 세상이 불바다-아비규환의 세상이 된다면 오늘 내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선물로서 주어진 이 집행 유예된 시간을, 그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은총과 구원, 회개의 때로 감사로이 받아들여 기쁜 마음으로 성실히 채워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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