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가진 시인이라면 누구나 평생에 단 한권이라도 신앙시집을 갖기를 원할 것이다. 아니 갖는 것이 아니라 제대에 봉헌하기를 원할 것이다. 시인 배달순님은 이미 84년에 서사시「성 김대건 신부」를 현대시학에 연재함으로써 신앙시의 선조적 길을 개척했으며 단행본으로 출판하여 그때도 저의 어줍은 소감이 경향잡지에 소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난 96년엔 단시 「성 김대건 신부」수정보완편이 출판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배달순 시인은 84년서부터 96년에 이르기까지 10수년을 「성 김대건 신부」 완성에 매달려 왔다고 볼 수 있다.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시인의 신앙과 신앙시에 대한 정열과 집념이 얼마나 진지한가를 알 수 있다. 하여 배달순 시인은 95년 가톨릭 대상을(문화부문)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빛으로 오시는 그대」는 이러한 시인의 숙원을 또 한번 성취시킨 큰 업적임을 알 수 있다. 제1부 26편은 예수의 탄생과 수난을 서두로 하여 성지를 순례하면서 얻은 깊은 성찰을 시인 특유의 신실하고 열정적인 감성으로 현장감 짙게 서술 표출하고 있다.
『누가 올리브 동산으로/걸어간다/저 갈바리아 언덕을/등허리엔 무거운 짐/우리의 죄와 슬픔을 메고/올라간다 (중략) 그날 빈 벌판에서 카인의 돌로 쳐죽인/아벨의 이마/그 피를 피로 씻어준다/온통 죄로 물든 땅을/지금도 씻어준다/하늘 같은/그대 장밋빛 사랑으로』(골로다의 길)
더 이상 간결할 수 없는, 더 이상 응집할 수 없는 견고하고 수식없는 언어, 서슬진 끌로 조소해내고 있는 그러나 헛되게 높지 않고 오히려 낮게 안으로 가라앉히는 목소리가 더욱 큰 여운을 안고 다가온다.
사실 우리는 신앙시의 전형 같은 찬미 찬양의 틀에 매인 어법에 많이 식상해 있고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가 신앙시를 외면하고 있다. 한마디로 예수쟁이 또는 천주학쟁이라는 야유적인 고정관념에서 신자 자신도 신앙시에 별 흥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참다운 시인이고 더 나아가 참다운 신앙인이라면 그 신앙시의 최후최고의 경지는 찬미 찬양으로 높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진실로 사랑과 은총을 깨달은 사람이면 어쩔 수 없이 머리숙여 감사하고 찬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배달순 시인의 시는 바로 핏줄로 가슴으로 하느님 사랑에 흐느끼며 은총에 머리숙이는 사람의 겸허와 감사와 찬미가 그 시의 전체를 흐르는 주조가 되어 있다. 다시 말하여 신앙시가 도달해야 할 지고지순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의 시에 흐르는 찬미와 감사가 결코 입술에서 올리는 때묻은 기도문 같은 소리가 아니라 내심 깊이 뿌리에서 우러나는 자기성찰과 맞물려 근원적인 체험의 감독으로 터져나오는 매우 고도의 잠언적 경지의 감상이며 기쁜 참미인 것을 알 수 있다.
『너는 조용한/나의 아들이었다/너무 내성적인 탓에/상처가 많은/내 아들(생략)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너는 가면을 썼다/뼛속 시린 영혼의/겨울속에/긴외투까지 껴입었다/그러나 너는/언제나 꿈꾸는 소년/…밤의 고통속에도/언제나/고향을 그리워했다/…네 부르짖음이 애처로워/나는 성령을 부었다/내 사랑의 큰 선물을』(예언자의 노래)
이렇게 시인은 절대자 그분과의 일치감에서 울리는 혼의 떨림으로 사랑을 확신하고 그 확신에서 스스로를 봉헌하는 감사이고 찬미이고 탄원이다. 때로는 지하철에서 때로는 목노주점에서 만나는 예수의 뒷 모습을 바라보는 시인의 가슴이 참으로 따뜻하고 눈물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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