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좁다는 느낌이 드는 17평 아파트를 들어서자 환한 웃음으로 맞는 최혜자(데레사ㆍ가양동본당)씨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누구나 한 가족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15년 가까운 시간을 사회는 물론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당하고 버림 받다시피 한 출소ㆍ재소 소년소녀, 매 맞는 여성과 함께 살아온 최혜자씨는 올해로 50대 중반으로 들어서고 있지만 나이를 잊어버린 듯하다.
일제가 패망하기 한해 전 일본 메이지 대학에 유학 중이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삶은 시작부터가 가시밭길이었다.
해방과 동시에 부모의 손에 이끌려 고국 땅을 찾은 그는 2살 때 경기로 뇌막염을 앓다 뇌성마비로 운동신경을 상실하고 만다.
어린 최혜자씨에게 전란으로 황폐화될 대로 황폐화된 고국 땅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땅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5년 여를 방황하던 최혜자씨는 두 동생이 공부하는 교과서로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해 2년 만에 합격했다. 이때 그의 나이 16살. 그는 내리 2년 만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마저 수료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한국의 어느 대학도 그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좌절의 삶. 방황 끝에 그의 눈앞에 놓인 것은 다량의 수면제와 쥐약. 서른을 넘기지 않은 처녀의 삶은 그렇게 꺼질 뻔했다.
다섯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실패한 최혜자씨에게 그리스도는 그렇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퇴원 후 완쾌되지 않은 병석에서 세례를 받은 최혜자씨는 까르멜수도회를 들었다 우연히 재속회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됐다. 그러나 재속회도 벽이 있어 대졸자가 아니면 입회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리스도신학교 입학. 오로지 배움의 열의와 그리스도를 향한 삶이 택하게 만든 길이었다.
『주님, 가시더미가 밀려오면 피하지 않고 끌어안겠습니다』
서원 후 최혜자씨가 기도한 첫 소원이었다. 그 소원이 이루어지려고 그랬을까 최혜자씨의 첫 활동은 범법자들을 끌어안는 삶이었다.
1984년 불혹의 나이에 들어선 그가 독립해 처음 문을 연 것이 「아브라함의 집」반포의 25평짜리 연립주택에 전세를 얻어 4명의 여성 출소자들과 함께 시작한 「아브라함의 집」은 그러나 이웃의 눈을 피해 2년만인 86년 화곡동의 13평짜리 아파트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는 남자 출소자들도 찾아와 이들에게 일자리를 구해주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분가시켜 나갔다. 그리고 여성 출소자와 미혼모들에게는 직업학교를 소개시켜줘 자립을 도왔다. 이곳이 재개발되면서 96년에 옮겨온 곳이 지금의 「은총의 집」이다. 그러나 독지가의 도움으로 가양동에 어렵게 마련한 「은총의 집」은 이웃의 따가운 눈총으로 6개월 만에 다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가양3단지에 새로이 마련된 「은총의 집」은 이제 매 맞는 여성을 위한 집의 역할도 하고 있다. 주위의 눈총을 사기 쉬운 미혼모들의 집은 따로 분가시켜 살림을 여러 곳에 꾸리고 있다. 수십 년을 그들을 위해 살아온 삶이 만들어낸 나름의 지혜다.
장기수들을 위해 편지보내기활동을 함께 펼치고 있는 최혜자씨는 불편한 몸으로 매일같이 10여 통에 가까운 편지를 쓰고 있다.
『사람을 보고 믿지 말고 주님을 보고 믿어 주십시오』
주님의 사랑으로 누고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들과 함께 살아온 삶이었기에 범법자들에게서도 주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최혜자씨. 그는 부족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대신해줄 편지 쓰기 봉사자라도 있어 소외된 이들에게 더 많은 희망과 빛을 나눠주길 기도하고 있다.
※연락처=서울시 강서구 가양2동 3단지 강변아파트 311동 1008호 02)3663-5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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