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하나 주었습니다. 마개를 열자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주는 거인이 나왔습니다. 거인에게 앞으로 나올 「미래의 신문」들은 가져오라고 명했습니다.
신문에 나오는 주가(株價)동향표를 보고 전망 좋은 회사주식에 투자를 보고 전망 좋은 회사주식에 투자를 해서 큰돈을 벌어볼 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나게 신문을 뒤적이던 이 사람이 갑자기 기절을 해버렸습니다. 1년 뒤의 신문에 자신에 대한 기사가 나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사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억만장자 △△△ 갑자기 사망하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계신 환자분들을 가끔 뵙니다. 생의 그 끝자락에서 그분들은 대개 부족했던 자신들의 지난 삶에 대해 후회들을 하십니다. 더 성실하게 정직하게 착하게 살지 못했음에 대해, 특히 하느님을 제대로 섬겨드리지 못했음에 대해 반성들을 하십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보통 마음일 것입니다. 아직 건강하고, 살 날이 많고, 모든 것이 여유로울 때 참된 가치, 영혼의 사정, 영원한 세상에 대해서 더 의식하면서 더 애틋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 좋으련만, 우리는 대개 이 귀한 기회를 돈/명예/건강 등에 세속적 행위를 추구하고 누리는데에 더 몰두하면서 허비해 버리곤 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련한 인간에게 예수님께서는 오늘, 참 행복과 불행에 대한 말씀을 통해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시고 또한 동시에 위로와 희망을 주십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우는 사람, 당신 때문에 미움 받고 쫓기고 욕먹고 누명을 쓰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시며, 반대로 부요한 사람, 배불리 먹으며 웃고 지내는 사람,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언뜻 보면 마치 「세상을 거꾸로 살라」고 하시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행복기준과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 사는 것이 세상을 「바로」사는 것일 것입니다. 현재 세속의 기준일는 것 자체가 하느님/예수님의 법과는 완전히 반대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의 참 기준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그 무엇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마음 자세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를 살리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생명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병들고 소외되고 오해받고 미움 받고 그래서 사는 게 힘들게만 느껴질 때, 더 이상 세상 그 어떤 것에서도 위로와 도움을 기대할 수 없을 때, 그런 내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더 낮아지고 더 나빠질 수 없는 그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비로소, 하느님 앞에 작은 존재에 불과한 자신의 실존을 제대로 의식하며 그분 앞에 겸손되이 무릎을 꿇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겸손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는, 이 세상에서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풍성히 내려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불행, 고통에 대해 하느님을 원망하고 불평, 불만만을 일삼는다면, 그런 나와 오늘 예수님의 행복서언은 전혀 무관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세속적으로 남들보다 조금 더 여유 있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면, 이에 대해 하느님께 겸손되이 감사드리면서 오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부유함과 명예, 기쁨 그 자체가 절대로 악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는」 인간 한계가 그 좋은 것들을 불행의 씨앗으로 변질시킬 수 있는 것이기에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함께 그분 안에서 성실히 삶으로 누리게 된 행복이라면, 더욱 더 하느님께 그 공(功)을 돌려 감사드리며, 행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행복」은 언제나 하느님께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인간의 자만과 교만이 없는 겸손한 그곳에 하느님/예수님의 자비와 사랑, 은총은 언제나 풍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있다면 무엇을 청하시겠습니까? 자칫 불행이 씨앗이 될 수 있는 거짓 행복을 잠시 가져다 준후 이내 사라져 버릴 세상의 헛된 가치보다는, 하느님의 좋고도 영원한 참 행복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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