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27일 제주도 서귀포 KAL호텔에서 열린 ‘하느님 말씀과 성직자 양성에 관한 세미나’는 한국교회 사제 양성의 요람인 대신학교 교육에 대한 진단과 함께 시대적 요청에 부합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광주가톨릭대학교(총장 정승현 신부)가 주최하고 제주교구(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후원한 이번 세미나에는 프레드릭 루조 신부(프랑스 파리노틀담신학교 학장)와 데니스 자시에 신부(프랑스 파리노틀담신학교 영성담당 교수)가 강사로 나서 ▲하느님 말씀의 사랑으로 양성하기 ▲성 이냐시오의 영성훈련과 복음적 관상 ▲신학방법 ▲성서 문자의 발견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과 신학적 방법의 실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주일미사 독서집이 지니는 풍요성 등을 주제로 발표했다.
세미나에는 최창무 대주교(전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광주대교구장), 두봉 주교(전 안동교구장), 강우일 주교, 이병호 주교(전주교구장)를 비롯한 주교단과 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부총장), 정승현 신부, 민병섭 신부(대전가톨릭대 총장), 이석재 신부(인천가톨릭대 총장) 등 전국 대신학교 교수신부 33명이 참여했다. 통역은 두봉 주교와 홍기범 신부(서울대교구 신당종합사회복지관장), 곽진상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가 각각 맡았다.
강우일 주교는 25일 개회사에서 “광주관구 광주가톨릭대 이사진은 시대적 흐름과 요청에 맞는 신학교 교육을 세우기 위해 5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모여 연구하고 논의해 왔다”며 “이번 세미나가 현 시대에 하느님 말씀을 능동적으로 선포할 수 있는 주님의 제자들을 양성하고, 또 신학교 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세미나의 자료집으로 쓰인 프레드릭 루조 신부의 논문 「사제 양성에서의 하느님 말씀」을 요약한다.
■ 사제 양성에서의 하느님 말씀
(Fr. Louzeau, President de la Faculte Notre-Dame de Paris, NRT 131(2009) 100-111)
사제직에 오를 사람들은 자신의 소명인 예언직을 수행하기 위해 ‘하느님의 생각’(1고린 2,11 참조)을 알고, 또 그것을 전달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교회의 슬하에서 새로운 모국어를 배워야 한다. 사제 지망생들에게 모든 방법과 수단을 제공해 그들이 하느님 말씀에 온전히 사로잡힐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들이 성서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게 함은 물론 더욱 근본적으로는 그들 자신이 살아있는 말씀의 담지자, 즉 ‘걸어다니는 말씀’이 되게 해야 한다.
- 성서 읽기 혹은 해석과 하느님 말씀을 식별해 내기
2천년 교회 전통 속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지속되어 온 것은 사제직 지망생들이 성서를 잘 아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일이다. 그 구체적 방법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교회의 전례에 온 몸과 마음으로 참여하기, 성서통독, 렉시오 디비나, 형제끼리의 나눔, 성서언어 습득, 주석학 공부, 이스라엘 및 성서관련 성지의 연구 답사 등이다. 문제는 성서가 엄밀한 의미의 하느님 말씀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느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성서를 읽고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말씀’과 ‘성서’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성서주석가가 반드시 예언자나 사도인 것은 아니다.
복음의 실체는 글로 적혀진 텍스트가 아니다. 복음이란 사도들의 살아있는 말씀, 그들의 설교다. 복음은 어떤 내용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그리스도 신비 자체라고 하는 실체의 현존을 전해준다.
교회 역사 초기에는 여러 해 동안 고유의 기록물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복음의 실체는 어떤 정보 전달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을 전달하는 것이다. 성서를 하나의 글로 보고 그것을 철저히 공부하는 것은 참으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공부에는 반드시 엄밀한 분별력의 훈련이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성서에서 하느님 말씀을 정확히 또 효과적으로 식별해내기 위한 분별 방법을 가지고 훈련해야 한다.
사제 양성 과정에서 하느님 말씀을 정확히 배치시키기 위해서는 성서를 대하는 자세에 관해서 어떤 구체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이냐시오 성인이 하느님의 뜻을 찾아나서는 수련자를 돕기 위해 개발한 영성훈련과 비슷한 방법을 써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성서를 앞에 두고 또는 성서 안에서 영들을 식별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다.
- 인간 이성의 역할
성서에 기록된 증언에서 하느님 말씀을 식별해내기를 배우는 일에는 신앙이 전제되어야 한다. 성서에서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교회생활에서 식별에는 언제나 신앙이 전제되어야 한다.
해석자가 믿음이 없다면 성서는 어쩔 수 없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게 된다. 성서는 해석자 자신이 허용하는 만큼만 열어 보여준다. 또 성서를 연구하는 신앙인은 자신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에 믿음을 두고 있음을 늘 확인하고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
성서 안에서 영들을 식별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인간 지성이 통상적으로 작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성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아멘”, “그렇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이것이 인간 이성의 존엄성이다. 동시에 이것은 인간 이성의 한계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성서를 올바로 해석하고 거기에서 하느님 말씀을 식별해 낼 수 있는 빛을 찾아낸다.
이제 사제양성 과정에서 학문적 주석이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인지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다. 합리적 주석은 성서에 대한 첫 말도 마지막 말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성서와의 관계에서 출발점이나 도착점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주석학은 이 둘 사이의 ‘중간’에 있는 것이다.
신앙은 끊임없이 주석 작업에 영감을 주고 빛을 제공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사람은 이성이 제공하는 모든 빛과 학문적 지식의 합리적 원천으로 무장하고 있으면서, 점점 더 큰 충실성과 정직성을 갖고 하느님 말씀의 진실성을 인정하고 표현해야 한다.
- 성서의 4중 의미에 관한 가르침
성서의 4중 의미에 대한 전통적 가르침은 성서에서 하느님 말씀을 식별해 낼 수 있는 합리적 방법을 제공한다. 그것은 신학과 성서 자체 속에 있는 심오한 논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심오한 논리를 증언하는 성서의 정경 형성과 성서의 4중 의미, 그리고 이 논리에 영감을 불어넣는 이냐시오 성인의 영성훈련 등을 생각하며 이를 찾아내는 일, 현대 주석학이 지니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들로 이 심오한 변증법적 논리에 봉사하도록 하는 일이 우리가 겨냥하는 목표이다. 그렇게 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천명한 바와 같이 ‘성서 공부가 신학과 사제 양성의 심장이 되게 해야 한다’는 말이 허사(虛辭)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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