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본격적으로 미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김 화백은 이력부터 화려하다. 그는 서양화가로 데뷔해서 일찍부터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다. 하지만 활동할수록 서양그림으로 서양인 화가들과의 경쟁에서 차별될 수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우리 것을 세계에 소개하고자 과감하게 동양화가로 변신했다.
김 화백은 운보 김기창(베드로) 화백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동양화의 매력을 하나씩 체득해 나갔다. 그 결과 1988년 프레스센터 서울갤러리에서 열린 두 번째 전시인 ‘산과 소나무’에서 ‘설악산 대망(大望)’ 등을 선보일 수 있었다. 특히 설악산을 10년 간 등산하면서 구상한 설악산 대망은 2m70㎝에 달하는 규모뿐 아니라 섬세한 표현으로도 국내외 시선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후, 그는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일본 나고야, 도쿄 등 등 20여 회의 해외전은 물론 국내에서도 꾸준히 전시를 열어왔다. 100회 이상의 그룹전 참여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감성적이면서도 세밀한 표현으로 주목받은 김 화백은 90년대 들어서 또다시 변신을 시도한다. 먹으로 성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 성화작가로서도 그는 금방 두각을 나타냈다. 수 십 년 째 이어온 성서 100주간 봉사를 바탕으로 한 깊은 영성과 풍부한 묵상이 김정자 화백 ‘표’ 성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영성과 묵상이 있었기에 서울대교구 시노드 로고, ‘여기 물이 있다’ 등의 차동엽 신부 저서 등에 성화 삽화작업도 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의 김 화백 활동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작가는 전시를 앞두고 “항상 지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작업에 임한다”며 “모든 것은 하느님이 주신 은총이며 매일을 그 은총 중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의 02-727-2336~7
▲ ‘CREDO 1’, 144×102, 20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