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시설조차 외면하는 행려자들의 마지막 피난처 전북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 성암마을 「만나의 집」
만나의 집은 호적상에 연고자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가나 사회시설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죽어가는 노인과 행려자들을 위한 무료 삶터이다.
조선대학교 외국어대학 중국학과 김태곤(프란치스코ㆍ광주 산수동본당) 교수가 10여 명의 협조자와 함께 사비를 털어 운영하고 있는 만나의 집은 5년 전인 지난 1993년 7월부터 시작됐다.
『연고자가 있는 행려자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입니다. 본당에서 오랫동안 빈체시오 활동을 하다 보니 이들을 위한 집을 마련해 함께 살고 싶어 시작하게 됐죠』
모든 것이 처음부터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폐교를 임대해 만나의 집을 꾸몄지만 비인가 단체라 제약이 많이 따른다. 우선 임대시설이라지만 폐교를 함부로 수리할 수 없다. 시설투자를 해놓으면 교육청에서 임대료를 올려버리기 때문에 만나의 집도 더 작은 폐교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제대로 시설을 갖춘 목욕탕을 설비할 수 없어 겨우내 많은 노인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
현재 만나의 집에 생활하고 있는 가족은 상주 봉사자를 포함해 모두 13명이다. 대부분 노인들인 이곳 가족들은 입소 때 영양실조와 중풍, 치매 등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봉사자로는 김다미아노 사무장과 잔심부름을 하고 있는 김베드로, 주방 봉사를 맡고 있는 김순분(마르타) 할머니와 강원도 영월의 선유사 주지 석지온 스님이 상주하며 이들을 돌보고 있다.
특히 김순분 할머니(65ㆍ서울 수유1동본당)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년째 이곳에서 주방봉사를 하고 있다. 『이곳에 오기전 3개월 동안 절두산 등 성지를 순례하며 묵상했습니다. 일찍 며느리를 본 덕분에 집안일을 손 놓은 지가 20여 년이 돼 제대로 주방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하루라도 봉사하고 와야겠다 마음먹고 내려온 것이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김순분 할머니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빨래, 노인들 목욕, 밭갈이 등 밤 9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쉴 틈이 없다.
함께 주방봉사를 하고 있는 비구니 석지온 스님은 『선방에만 있다가 만행을 위해 이곳에 찾아왔다』며 『수도자로서 이들을 통해 제 자신을 볼 수 있어 큰 덕을 쌓고 있다』고 만족해 했다.
만나의 집 한 달 생활비는 대략 2백여만 원이 든다. 김태곤 교수가 자신의 월급에서 70~80만원을 쪼개고, 나머지는 아버지부터 시작해 친인척들과 친구, 협조자들의 도움을 받아 충당한다.
이들 협조자중 김용수(토마ㆍ광주 지산동 본당)씨는 그의 오른팔과도 같은 존재이다. 자영업을 하는 김씨는 물질적 도움은 물론 김교수와 함께 매주 토요일 만나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장정의 손이 필요한 온갖 허드렛일을 다한다.
또 매주 토요일 한의사가 만나의 집을 찾아와 이곳 식구들과 주민들에게 무료 침술 치료를 봉사해주고 있으며, 장수본당에서도 본당 신부가 2개월에 한 번씩 이곳을 찾아 미사를 봉헌한다. 또한 장수본당의 협조로 수녀들이 몇 차례 파견돼 가족들에게 기초교리를 가르쳐 최근에 들어온 2명을 제외하곤 모두 신자가 됐다.
만나의 집 가족들의 마음을 좀 더 깊이 헤아리고 싶다는 소망 때문에 광주대학교 야간대학원을 다니며 낮에는 교수로 밤에는 학생으로 생활하면서 사회복지학을 전공, 이제 석사 졸업논문만 남겨놓고 있는 김태곤 교수.
『만나의 집 식구들이 육체적 건강은 쉽게 회복하나 정신적 건강 치료를 위한 방법들을 잘 알지 못해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인간적인 어떤 욕심보다 평신도 사도직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저 혼자로서는 죽어도 이 일을 해내지 못하죠. 초창기부터 서울의 세실리아 자매, 장수읍 막시미노 부부, 동화 공소 회장님 등 많은 은인들이 도와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하느님의 은총이 제일 크겠지만 말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하느님께서 이들을 굶기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산다는 김태곤 교수, 끼니를 거르지 않고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살다가 가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는 김교수는 분명 이 세상에 하느님의 모습을 비춰주는 의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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