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일치기도 주간은 이미 지난해 30년의 연륜을 넘어섰지만 한국교회에서 여전히 그 성과는 미약하다. 물론 사안별로 개별적이고 산발적인 모임과 협력은 이어지고 있지만 각 교회를 대표하는 책임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공식적 대화의 장은 마련되고 있지 않다.
일치의 표지 대희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천년 대희년을 준비하는「제3천년기」를 비롯해 여러 자리에서 대희년이 일치의 한마당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2천년에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예루살렘에서 만날 것을 원하는 뜻을 여러 차례 표명했다.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 에드워드 캐시디 추기경은 이러한 교황의 뜻을 재확인하면서 교회 일치운동의 뜻을 실현에 옮기기 위해 각 교회 지도자들과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신앙교리성 장관요셉 라칭거 추기경은 보다 분명하게『교황은 예루살렘에서의 축제가 결코 승리주의적 쇼가 되기를 원칙 않는다』며『오히려 평화의 표시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의지와 복음적 소명에 따라 2천년 대희년을 앞두고 한국교회의 교회 일치 노력을 반성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한국교회 일치운동
한국교회 일치운동의 역사는 크게 60년대 말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일치의 노력과 70년대와 80년대 어지러운 시대 상황속에서의 민족과 사회 문제를 둘러싼 현장에서의 정의 구현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일치주간이 시작된 68년 가톨릭과 개신교 성서학자들은 성서공동번역위원회를 구성해 성서 번역에 함께 착수했고 그 결과는 71년 신약. 77년 구약 공동번역성서로 이어졌다. 이 역사적인 공동번역성서는 한국교회는 물론 세계 교회에서도 유래가 없는 교회 일치 노력의 산물이었다.
『말씀』을 통한 일치 노력의 결실을 얻은 가톨릭과 개신교는 70년대와 80년대 사회와 정치 현장에서 다시 만났다. 군부 독재 치하에서 양심적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복음적 소명에 따라 사회정의 구현, 인권회복,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투신했고 이 현장에서 타 종파의 성직자와 신자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민족과 국가를 향한 뜨거운 양심의 소리는 곧 자기가 속한 종파 우선주의와 이기주의, 독선과 아집을 접어두고 교회 일치를 위한 상호 이해와 협력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공적 대화의 장 절실
하지만 이처럼 말씀과 사회ㆍ정치적 이슈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일치의 노력이 과연 얼마나 깊게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바탕으로 다져졌는지는 의문이다. 공동번역성서는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회의 사용거부로 그 의미가 퇴색됐고 문민정부의 출범 이후 어느 정도 민주화의 목표가 달성됐다는 판단 아래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하는 자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사실상 한국에서는 일치기 도모임이 각 종파의 성직자나 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기도모임을 위한 대화마저도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사회운동을 통한 만남은 그 역할과 기능이 축소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는 학문적 만남, 신학적 대화의 전망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각 종파의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상호이해를 위한 공식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가톨릭대학교 사회교육원장 김성태 신부는 『신학적 논의는 매우 미묘하고 조심스러운 것이므로 신중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고『우선은 기도모임을 통해 내적 성숙을 기해야 할 것』이라면서도『교회 일치의 당위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으며 완전한 일치를 향해서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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