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ㆍ노씨 같이 큰 죄를 지은 사람도 나오는데 엄마 보자고 찾아와 아무 짓도 안한 아들은 왜 30년이 넘게 갇혀 있어야 되는지 모르겠다”며 눈물…
지난 12월 22일 오전 10시 안양교도소 앞, 12ㆍ12 및 5ㆍ18사건으로 구속된 지 2년 만에 특별 사면ㆍ복권으로 풀려 나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취재하려는 보도진에 묻혀 보일 듯 말듯한 한 서린 몸짓이 있었다.
민주화운동으로 자식과 부모형제를 감옥에 보낸 운동가들의 가족들인「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ㆍ회장=임기란)」어머니 10여 명이 그 주인공들.
97년 4월 17일 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형의 확정판결을 받은 지 꼭 8개월 만에 풀려나 공무담인권 등 각종 공민권을 회복하게 된 전씨를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이 환한 웃음으로 취재진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을 때 이들은 아픈 가슴을 쓰다듬어야 했다.
이날 전ㆍ노씨의 사면을 TV를 통해 지켜보며 누구보다 아픈 가슴을 누르며 눈물짓는 사람이 있었다. 5년째 민가협 활동을 해오고 있는 고봉희(90) 할머니. 올해로 32년째 대전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칠순의 아들 신인영씨를 석방시키기 위해 서 있기조차 힘든 노구를 이끌고 활동을 해오고 있는 고 할머니는 『전ㆍ노씨 같이 큰 죄를 지은 사람도 나오는데 엄마 보자고 찾아와 아무 짓도 안한 아들은 왜 30년이 넘게 갇혀 있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눈물지으면서도 새 대통령에 거는 희망을 숨기지 못했다.
97년 11월초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의「양심수 관련 발언」과 이에 대해 법무부와 정부 측이 이례적으로 보도 자료의 형식으로『우리나라에는 양심수가 한 명도 없다』는 반박성명을 냄으로써 다시 불거져 나온 양심수 문제는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은 98년도에 새롭게 되뇌어 봐야 할 해묵은, 그러나 꼭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양심수」란 말의 유래
본래「양심수」라는 용어는 법률 용어가 아닌 정치사회적 개념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80년대 민주화 투쟁기간을 거쳐 쌓여온 양심수 문제는 현 정권 들어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 자체가 흐려진데다 지난해 한총련 사태로 과거의「시국사범=민주인사=양심수」라는 등식이 희석되면서 한동안 세인의 기억에서 멀어지게 됐다.
「양심수(Prisoners of Conscience)」란 표현은 세계적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규약에서 유래했다. 1961년 영국 변호사 피터 베넨슨이 포르투갈의 두 대학생이 반정부 발언으로 7년형을 받을 것을 보고 옵서버지에「잊힌 수인들」이란 글을 기고했고, 이에 공감한 지식인들이 포르투갈 정부에 항의편지를 쓰면서「양심의 수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일반화됐다.
국제사면위원회가 규정하는 양심수는「폭력을 행사하거나 옹호함이 없이 국제인권규약에 위배되는 투옥, 구금, 육체적 억압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구속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이때「폭력성 유무는 정부 발표나 판결문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그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라 사건진행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경우 그를 양심수로 분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심수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정부와 민간 사이에 뚜렷한 시각차가 존재하는 것은 물론 마찰까지 빚고 있다.
공안당국의 공식 입장은『문민정부에 양심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양심수는 관련한 공식통계도 없는 것이 현실. 최근 양심수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검찰에서 구속 공안사범의 수를 1천여 명이라고 밝힌 것뿐이다.
민가협의 입장
그러나 민가협의 입장은 다르다. 각 대학 학생회, 노동조합, 언론, 법원, 교도소 등을 통해 정기조사를 하고 있는 민가협은 97년 10월 1일 현재 양심수의 숫자가 8백59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 중 국가보안법 위반이 전체의 63.2%인 5백43명, 장기수가 57명을 차지하고 있어 정부의 입장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 대해 유엔인권위산하「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 위원회」는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김성만, 황대권씨 등과 소설가 황석영씨 등 우리 사회에서 공산당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에게「자의적 구금」판정을 내리고 조속한 석방을 권고한 바 있다.
또 유엔「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도 한국의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수의 무조건적인 석방을 권고한 바 있으며 이는 유엔의 공식문서로 채택되기도 했다.
지난 12ㆍ18 대통령 선거로 50년 만에 여야 간의 정권교체가 이뤄진 지금「양심수 문제」는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을 받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 자신이 과거 야당시절 양심수를 자청했고 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전ㆍ노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으로 새로이 부각되기 시작한 양심수의 사면 문제는 법적인 고려에서는 물론 사회ㆍ심리적 형평성 차원에서도, 또 곧 들어설 새 정부가 내세우는 사회대통합 의지를 시험하는 바로 미터의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앰네스티 “1백여 명”
인권단체들의 주장에 따르면 문민정부에 들어서 사면된 양심수는 다섯 차례에 걸쳐 2백53명. 그나마 문민정부 초기 사정의 서리를 맞았던 박철언, 이건개씨 등 비리 정치인들의 사면에 끼워넣기식이었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이는 비리인사 70여 명이 사면되면서 이들 틈에 끼여 45년간 복역한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씨 등 장기수 3명을 비롯해 20명이 석방된 사실을 통해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아직도 차가운 감방에는 30여 년을 넘게 복역하고 있는 30명에 이르는 장기수와 앰네스티가 공인하는 1백여 명의 양심수를 비롯, 5ㆍ6공 시절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갇힌 이들이 적지 않다.
전ㆍ노씨 등에 대한 법적인 단죄가 이뤄진 지금까지 양심수들이 갇혀 있는 현실은 아직까지 국제적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인권상황의 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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