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가정 축일입니다. 가정은 기본적인 사회요, 「작은 교회」입니다. 신학적인 강론 말씀을 드리는 것보다 가족 구성원들의 진솔한 사랑 이야기를 직접 듣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어느 시골 본당신부로 있을 때 교우들에게 편지를 써오라 하여 성가정 축일에 강론 대신 읽어준 적이 있었습니다. 가족 간의 사랑의 편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드리는 편지입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밖에는 눈보라가 치고 있는데 오늘 아침 당신이 불쑥 던진 말에 나의 마음은 왠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양 멍하니 창밖만 바라다 봅니다. 당신과 만나 결혼한 지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지났군요.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결혼해 한집에서 살다 보니 힘든 때도 많았다고 봐요. 타의든 자의든 아무렇게나 던지는 당신의 말이 저의 가슴에는 앙금으로 쌓이네요. 이렇게 펜을 들고 보니 지금껏 살아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오네요. 당신은 언제나 돈, 돈 하는데 전 그게 못마땅해요. 물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많이 쌓이겠지요. 그렇기에 돈이면 최고다. 안 되는 일이 없다. 이런 생각이 들겠지요. 물론 돈도 있어야지요. 하지만 돈의 노예가 되다 보면 자기의 삶을 찾지 못하잖아요.
행복은 자기 마음속에 있다고 봐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자기 자신의 생활에서 민족을 찾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지고, 억만장자도 자기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 불행하다고 느끼면 불행한 거랍니다. 행복의 기준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보, 당신과 나는 같은 배를 타고 먼 미지의 나라로 항해하는 것과 같아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배안에서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아옹다옹하면 결국 그 배는 파산에 이르고 말 것이예요. 가다 보면 험한 풍랑과 비바람 속과 같은 때도 없다고는 볼 수 없잖아요. 당신과 제가 배를 잘 운전해 가야만 우리 두 아이도 평화로운 가운데 정서적으로 잘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우리 두 아이 착하고, 바르고, 예쁘게 자라 학교에서 우등생인 것을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까? 「자식농사는 백년농사」라는데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어요. 당신은 욕심이 많고 무슨 일이든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시는 데 이것 좀 고쳐주세요.
여보, 저의 소원은 당신 몸과 마음 건강하고 자기 맡은 임무에 충실하며 모든 것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 자녀 지금과 같이 잘 자라 주며, 하느님의 말씀 속에서 생활하고 성가정을 이루어 모든 가정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 소망이라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나 이 세상에서 당신을 제일 생각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은 당신의 아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당신의 아내가
다음은 고등학교 1학년 딸이 엄마께 드리는 글입니다.
텅 빈 들의 앙상한 가지만들이 12월의 싸늘함을 더해줄 때 나의 어머니는 무슨 걱정으로 하루를 여실까요? 하늘에서 눈꽃이 내릴 때면 마냥 좋아만 하는 딸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희들을 위해 애쓰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글로써 잠시나마 위로해 드릴까 합니다.
벌써 14년이란 세월이 흘렀군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론 여자의 힘만으로 수많은 날들을 오직 자식들만을 위해 희생하시는 어머니!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지요. 그날도 어김없이 어머니는 서둘러 일터로 향하시다가 꽁꽁 얼어붙은 내리막길에서 넘어져 어머니의 몸은 그만 피멍으로 얼룩져 버렸고, 주위 분들의 부축 하에 간신히 일어서게 되셨을 때 집에서 쉬어야 한다는 말에도 개의치 않으시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일터로 가시던 어머님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 늦는 날이면 주인의 따가운 눈총을 잘 참아 내셨던 나의 어머니!
하루는 멀리 떨어진 외딴 곳으로 나물 캐러 가셨을 때 한 뿌리라도 더 캐시려다 그만 막차를 놓치고는 무섭고 험한 길을 한밤중에 몇 시간이나 걸어오신 적이 있지요. 그때 나는 평소에도 몸이 약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갖가지 나쁜 상상만을 하게 되었고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지요. 밤 늦게서야 다리가 아파 절룩거리며 걸어오시는 어머니가 너무도 초라해 보여 나도 모르게 화를 내며 왜 이렇게 늦었냐는 나의 철부지 같은 말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저녁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날 밤 저는 눈물이 뒤범벅된 채로 잠드신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진정으로 어머니의 가슴속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은 나물 한 뿌리의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하느님에 대한 강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시의 여유 없이 지난날을 홀로 두 사람 몫을 일해 온 대가로 지금은 지칠 대로 지친 어머니는 밤이면 더욱 괴로워하셨고 가끔 앓는 신음소리에 저는 잠 못 이루고 어머니께 괜찮으시냐는 물음으로 아픔을 대신할 수밖에 없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성모상 앞에 촛불을 켜고 함께 기도드릴 때 그 동안의 삶의 고통들을 잊으시고 행복해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이제는 저도 행복을 조금은 찾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자연의 법칙 속에서 저도 조금은 생각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고 이 세상에서 소외당하고 사는 사람들, 참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어 사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살아야 할 어머니의 고마움과 희생을 생각하며 성서의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귀절을 가슴깊이 묵상하면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딸, 어머니께 착한 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딸 올림
지금까지 저는 여러분들의 글을 통해 여러분들이 어떻게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지 일깨워 드렸습니다. 교우 여러분, 부디 주님을 가장으로 모시고 주님의 뜻을 가족 안에서 이루도록 노력하며,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가정에 축복과 은총을 주시도록 기도드립시다. 새해에 주님의 축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 강론은 「말씀의 전화」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042-152」를 누른 후 사서함번호「3217」(삼위일체)을 누르십시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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