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사는 창간 60주년을 맞는 1987년과 창간 71주년인 1998년에 각각 「가톨릭 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에 관한 전국적인 의식 조사를 행한 바 있다. 필자는 1998년의 조사에 연구책임자로 참여하였다. 이 두 조사의 결과를 비교해봄으로써 한국교회의 현실을 진단하고 당명한 과제들을 찾아내고자 한다.
1. 한국교회의 현실 진단
1) 위기의 징후들
1987년과 1998년의 조사 결과를 비교해 보면, 신자들 사이의 공동체적 유대 그리고 교회생활에 대한 참여도라는 두 영역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여, 신자들이 그리고 있는 다음 세기의 한국교회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신자들은 교회의 미래에 대해 여전히 낙관적이기는 하지만, 낙관의 색채는 매우 어두워졌다. 21세기에 한국교회가 지금보다 더 발전하리라고 보는 신자들의 비율이 87.8%에서 67.4%로 무려 20%나 감소한 것이다.
먼저, 교회 내부의 공동체적 유대가 약화되는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수직적」차원과 평신도 사이의 「수평적」차원 모두에서 확인되고 있다. 「수직적」차원에서 확인되는 공동체적 유대의 약화는 주로 교회의 여러 활동에 대한 낮은 인지도와 참여도로 표현되는, 의사소통의 단절 내지 비효율성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교회 계통의 출판물 가운데 절반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매체가 주보에 불과하다는 사실 역시 교회 상하간의 의사소통이 원할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증거라고 하겠다. 「수평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공동체적 유대의 약화 현상은 동료 신자들과 거의 대화하지 않는 신자들이 빠르게 증가했고, 본당 신자들과 형제자매라는 공동체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신자들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신자 10명 중 4명 정도는 한번쯤 교회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잇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정 때문에 동료 신자들과 강한 공동체적 유대를 유지하면서 교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신자층과, 교회공동체의 어저리에 머물면서 소극적으로만 참여하는 이들로 신자집단이 양극화되는 양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더욱이 신자들의 신앙 유형이 전반적으로 개인주의화 내지 사사화(私事化)의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현상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교회생황에 참여하는 정도와 열의가 감소하는 추세 역시 확연하다. 교회의 각종 사도직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신자의 비율은 과거와 별 차이가 없지만, 두 개 이상의 단체에 동시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신자의 비율은 지난 10년 동안 뚜렷하게 감소하여 교회생활에 대한 신자들의 참여 열의가 감소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신자들의 재정적 참여도 역시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가토릭 신자로서의 자부심을 못가진다는 신자도 크게 늘어났다. 또 과거에 비해 대인적인 접촉을 통한 「직접적인」전교방식에 대한 선호가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천에 옮길 신자 개개인의 열성은 오히려 많이 약화되었다. 교회생활 참여도와 신자들간의 공동체의식 모두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지표로서 구역·반모임에 대한 참여도를 들 수 있다. 충격적인 것은 지난 수년 동안 전교회 차원에서 소공동체운동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사이에 구역·반모임에 대한 신자들의 참여도가 오히려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구역·반모임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비율은 1987년의 49.2%에서 1998년에는 46.5%로 감소했으며, 더욱이 이런 결과는 「매우 자주 참여」하는 신자 비율의 큰 감소, 그리고 「거의 참여하지 않는」신자 비율의 두드러진 증가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문제는 지난 10년간 사주·관상·점·토정비결 등 민간신앙에 대한 접촉 경험자가 상당히 늘었다는 점이다. 이런 결과는 폰 서비스나 신문연재 등의 상품화된 형태로 접촉의 기회 자체가 엄청나게 늘어난 탓이기도 하고, 신자들의 의식 자체가 토착적인 것과 신비적인 것을 좇는 시류에 휩쓸려 가고 있는데 연유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또 무종교인 및 타종교인과의 결혼에 대한 수용적 태도가 강화되는 와중에도, 타종교 전반에 대한 혐오적 태도가 강화되고 있다. 이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타종교에 대해 「관용적·대화적인」태도를 유지해 온 가톨릭 신자들이 다시금 「배타적·대결적인」태도로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2) 희망의 징후들
두 차례의 조사를 통해 확인되는 가장 고무적인 변화는 특강·피정·성지순례 등 교회가 시행하는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들에 대한 참여도가 크게 증가했고 그 교육효과도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현재 10명 중 7명 정도의 신자들은 교회가 신자의 신앙 재교육이나 영성훈련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고, 10명 중 6명 정도의 신자들은 교회가 시행하는 각종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각종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들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신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그 경험이 자신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두번째 희망적인 징후는 교회의 사회적 봉사활동에 대해 신자들의 압도적 다수가 변함없이 확고한 지지의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도시-농촌 직거래운동(93.1%), 환경운동(91.2%), 민족화해와 통일운동(90.6%), 북한돕기운동(89.5%), 장기기증운동(88.5%), 해외 기아나 난민돕기운동(88.4%)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현실은 21세기에도 가톨릭에 대한 비신자들의 긍정적인 인식이 지속되리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세번째 희망적인 징후는 지난 10년 사이에 가족 모두가 가톨릭 신자인 가정의 비율이 근소하게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원 중에 다른 종교의 신자가 있는 가정의 비율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가족 중에 타종교의 신자보다는 아무런 종교도 믿지 않는 무종교인이 다수 섞여 있거나, 신자 가정 내에서 세대간의 종교적 전승과 타종교인인 가족원들을 상대로 한 전교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 21세기 한국교회의 과제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21세기와 새로운 천년에 대비해야 할 것인가? 신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먼저 들어보자. 21세기 한국교회의 선결 과제를 물은 1998년의 조사에 따르면, (1)「신자들 사이에 공동체적 유대의 강화」를 요구하는 응답이 전체의 35.4%를 차지하고 있고, (2) 「교회의 사회봉사적 기능 강화」를 요구하는 응답이 전체의 23.4%, (3)「신자와 교회의 내적 쇄신」을 요구하는 응답이 21.2%, (4)「선교노력의 강화」를 요구하는 응답이 16.8%로 나타났다. 지난 두 차례의 조사에서 드러난 우리 교회의 「위기 징후들」과 「강점들」을 일반 신자들 역시 거의 정확히 감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신자들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경청하고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21세기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한 의제들을 추리고 그것들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은 「희망의 징후들」을 적극적으로 현실화하면서 「위기 징후들」의 표출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면적이면서 다순한 문제해결을 시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컨대 새 신자를 영입하거나 냉담자를 회두시키는 일은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새 신자와 회두자를 감싸안을 공동체와 감정적인 유대, 살아 있는 전례와 말씀의 선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6개월이나 1년 동안 교회 안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교회의 의사결정과 운영방식이 성직자와 소수의 평신도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대다수의 신자들이 자신은 들러리일 뿐이라고 느낄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대형화되고 관료화된 교회가 하루아침에 따뜻하고 인간적인 작은 공동체들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신자들의 교회이탈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교회의 공식 입장에 위협을 주는 방식으로 미충족된 종교적 욕구의 충족을 시도하는 일탈적인 움직임도 성행할 가능성이 있다. 또 지난 수십년 동안 서구나 가까운 일본에서 신종교들이 번성해 온 현실을 볼 때, 우리 사회에서도 「비교적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하면서도 가치부재에 허덕이는」젊은 층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새로운 유형의 종교들이 번성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그것은 개종의 경험을 겪은 젊은이 본인 뿐 아니라, 그 부모나 친지들에게도 엄청난 심리적 충격과 갈등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이에 대비하는 신학적 입장의 정립, 교육과 상담의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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