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앙인들은 성당에서나 일상생활에서 교우들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같은 신앙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동질의식을 갖고 지냅니다. 참 좋은 일이죠. 그리고 주님이 직접 가르쳐준 주님의 기도문으로 자주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그러나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은 이렇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면서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자주 있어 마음 아픕니다.
누구누구는 기복신앙신자이어서 자녀 입시철이나 남편 승진 때에는 성당 문이 닳도록 드나들다가 그것이 끝나면 주일 미사도 잘 안 나온다고 비방하거나, 밖에서 행실이 안 좋은 사람인데 성당에서 같이 행동하기가 꺼림칙하다면서 멀리 하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다. 이같이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경솔한 행동이 불목의 화근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상임위원이나 봉사자들로부터 일반 교우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에는 냉담신자로 변하게 하기도 합니다. 열심한 신자일수록, 봉사를 많이 하는 신자일수록 조금 부족하거나 소극적인 교우들에게 우쭐대거나 비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런 소극적인 신자분들이 잘하고 있다거나 칭찬해주고 싶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들을 인간의 잣대나 얄팍한 신앙지식으로 단죄하거나 따돌림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위하고 배려해주지는 못할지언정 비난하고 헐뜯어서야 되겠습니까? 내게 싫은 애기 한마디 했다고 그를 내쳐버리면서 어찌 형제자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따돌리거나, 비난한다면 어찌 공동체 운운할 수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공동체 구성원은 서로를 끝까지 감싸주고 믿어주며 안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 대한 판단은 주님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부족해 보이는 교우에게 충고와 조언을 하는 것도 예의를 잃지 않는 가운데 이뤄져야 하며, 충고에 선행되어야 할 점은 ‘사랑’과 ‘겸손’, 그리고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자신 안에 겸손과 사랑이 없으면 충고하려들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남을 충고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충고해야 합니다. 상대의 변화를 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옥으로 들어갈 때는 얼마든지 혼자서도 갈 수 있지만 결코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잘못은 주님께 맡기시고 동료들의 모자람에 내 한 손을 먼저 내밀고 이웃들의 부족함에 내 가슴 먼저 열어 보이시며 함께하는 공동체의 봉사자이고자 할 때 우린 진정 하느님의 길을 간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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