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햇살이 내리뙤는 월요일 오전. 고요함이 흐르는 신학교 교정의 뒷켠에는 요란한 기계소리가 쉴새없이 흘러나온다. 20여명의 봉사자들이 삼삼오오 조를 나눠 빨래 비비느라 손놀림이 분주하다.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빨래 봉사하는 자원봉사자들. 이들은 흐르는 땀을 뒤로한채 한팀은 열심히 빨래를 빨고 또 다른 봉사자들은 부지런히 빨래를 넌다. 이러한 광경은 오전 내내 끊이질 않고 계속된다.
『신학생, 교수 신부님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여기서 봉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착하고 어지신 신부님들이 많이 나오길 기도드리며 봉사하고 있어요』
처음 신학교가 대구시 남구 봉덕3동 앞산에 자리잡고 있을 때부터 빨래 봉사를 시작했다는 윤정애(아가다·72·대구 남산본당)씨. 올해로 17년째 봉사하고 있는 그는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바로 사제서품식이 있는 날이라고 한다. 늘 뒤에서 지켜보던 신학생들이 사목자로서 첫발을 내딛을 때 미력하지만 여기서 봉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구보다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고. 아울러 윤씨는 『신학생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주님께 감사드린다』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열심히 봉사하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사제서품식이 있는 날이면 빨래 봉사자들이 모두 참석해 새 신부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다.
현재 신학교에서 빨래 봉사하는 봉사자들은 대략 20여명. 이중 15년 이상 봉사해온 사람들이 10여명이 넘는다. 특히 이들의 연령이 대부분 일흔을 넘고 있지만 어느 젊은 봉사자들보다 노련하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 많은 젊은 봉사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남산본당 레지오 단원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빨래 봉사자들. 신학교와 인접한 곳에 있어 이 본당에서 많은 봉사자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중엔 먼곳으로 이사가서 오기가 불편한데도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며 빠지지 않고 나오는 할머니 봉사자들이 많이 있다.
빨래 봉사는 월,화요일 이틀에 걸쳐 계속된다. 첫날은 빨래를 빨고 둘째날은 다림질을 하기 때문. 현재 신학교에는 큰 세탁기 1대, 탈수기 2대, 가정용 소형 세탁기 2대가 있다. 일주일에 대략 옷만 80~100여벌을 빨고 있다. 오랫동안 봉사한 할머니 봉사자들은 처음 이 일을 할 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 편하게 봉사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당시는 모든 곳을 손으로 일일이 빨래했고, 추운 겨울날 옷을 널려고 옥상에 가다보면 흘러넘친 물로 상의가 얼곤 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때가 정말 보람되고 기뻤다고.
재봉실·세탁실을 담당하고 있는 구영애(마리아) 수녀는 『할머님들이 몸이 불편하신데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며 『이 분들은 누구보다 소명감을 가지고 이 일을 큰 기쁨으로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손자가 현재 신학교 4학년에 있다는 오필선(율리안나·73)씨. 그래서 율리안나 할머니에겐 모든 신학생들이 친손자들이고 큰 보람이다. 그는 혹시 잘못된 옷이 생길까 꼼꼼이 옷들을 챙기며 부지런히 일손을 놀린다.
봉사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신학생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으뜸이라고 말하는 빨래 봉사자들. 이들은 한결같이 훌륭한 사목자가 배출되길 기도하며 봉사하고 있다. 올해로 15년째 봉사하고 있는 이필란(데레사·73)씨는 『신학교가 방학할 때는 너무나 가슴이 허전하고 삶의 활력을 잃는다』면서 『여기서 오랫동안 봉사한 모든 사람들이 월, 화요일만 기다리고 있다』고 봉사자들의 심정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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