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한자문화권에서 인간의 완성은 무엇보다도 성현군자(聖賢君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도덕적·윤리적 완성은 인간의 미래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데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완성을 현실에서 추구하려는 수덕지향적(修德指向的) 의지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현실의 인간은 누구나 성현군자의 길을 이상(理想)으로 걸어갈 수 있으며, 이상을 현실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지극한 현실지향의 목표를 갖는다.
리치는 ‘아래’에서 출발하는 이상주의적 인간관을 부정하지 않지만, ‘위’에서 출발하는 하느님의 존재를 언급하며 신적(神的) 지혜의 속성을 말한다. 하느님은 성인의 지혜를 훨씬 초월해 계신 존재로 인간의 이상적 인물인 성현군자와 비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과거도 미래도 없는(無往無來) 존재, 시작도 마침도 없는(無始無終) 하느님은 무엇으로도 다 채울 수 없는(無處可以容載之) 분이시나, 오히려 모든 곳을 다 채워주는(無所不盈充也) 존재이다. 그분의 능력은 망가짐도 쇠함도 없으며 없는 것을 있게 할 수 있는(其能也無毁無衰, 而可以無之有者) 존재이다. 하느님의 지능은 몽매함도 없고 오류도 없어 만세 이전이나 만세 이후의 미래일지라도 그분의 앎에서 벗어날 수 없고, 마치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과 같다(其知也無昧無謬, 而已往之萬歲以前, 未來之萬歲以後 無事可逃其知 如對目也). 과연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을 이해하려면 하느님의 존재를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애써 도달해야 할 덕목(德目)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개개의 창조물에게 베푸시는 은덕에 불과하다. 하느님의 은덕은 광대해 제한도 없고 막힘도 없으며 그 어떤 부류에도 편견 없이 미치지 않음이 없다(其恩惠廣大 無壅無塞 無私無類 無所不及). 하늘과 땅 안에 있는 착한 본성과 착한 행동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게 없다(夫乾坤之內 善性善行 無不從天主稟之). 그러나 이 모든 은덕도 하느님 존재를 생각하면, 물방울 하나를 바다에 비교하는 것에도 미치지 못한다(雖然 比之于本原 一水滴於滄海不如也). 하느님의 복덕은 온누리에 꽉 차서 보탬도 덜어냄도 가능하지 않다. 강이나 바닷물은 다 길어낼 수 있고, 바닷가의 모래도 다 헤아릴 수 있을지언정 하느님은 온전히 밝힐 수 없는 존재(天主不可全明)인 것이다.
인생의 이상을 자신의 노력에 근거한 인간의 완성에 목표를 두고 있는 인문주의에서, 신의 존재는 사실상 수용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공자 이후 일방적인 유교적 인문주의화(人文主義化)의 과정을 밟아온 유교문명권에서 유교적 이상을 초월하는 인격주의에 근거한 신 존재의 소개는 새로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치가 만난 당시의 중국문명은 유교·불교·도가 사상이 병존하며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해 없이 그리스도교를 소개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리치는 그리스도교를 소개하면서 유불도(儒佛道)의 삼교사상(三敎思想)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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