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말이 필요가 없는 분이다. 교회 박사 중의 박사다. 오늘날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전개는 대부분 토마스 아퀴나스(축일 1.28)에 의해 정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느님에 대한 이해의 논리적 밑바탕을 만드신 분이다.
‘토마스 데 아퀴노’ 혹은 ‘토마스’라고도 불리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 로카세카 성에서 1224년 혹은 1225년에 아퀴노의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작의 아들이었던 만큼 살림은 풍족했다. 단순히 돈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란돌프(Lhndulphus)라는 분이었는데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에게는 조카가 되고 하인리히 6세와는 종형제 사이다. 또 어머니 테오도라(Theodora)는 노르만디의 왕족의 친척이었다. 소위 말하는 명문가에서 태어난 것이다.
부모는 토마스가 5~6살이 되었을 때, 몬테카시노의 베네딕토 수도회에 봉헌하여 수도생활을 하게 했다. 당시 수도원장의 이름도 아버지와 같은 란돌프였다. 수도원장이 토마스 아퀴나스 집안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수도회에서 어린 토마스가 보인 덕행이나 학문의 진척은 놀라울 정도였다. 신동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지적 지능이 우수한 것만이 아니었다. 성실했으며 늘 학문을 탐구하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다른 아이들과 놀고 있을 때에도 의문이 머리에 떠오르면 즉시 놀음을 그치고 스승에게 달려가서 질문하곤 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당하지 못하는 법이다. 10세 때에 이미 보통의 다른 17, 8세 소년보다 더 많은 학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수도원장 란돌프는 아직 어린 토마스를 나폴리의 대학에 입학시켰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초등학생이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나폴리 대학은 당시 학생들의 풍기가 나쁜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어린 토마스는 그 어떠한 유혹에 대해서도 위험을 느끼지 않았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깊었던 만큼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느님에 대한 것만 찾았다. 세상 사물에 대해서는 티끌만큼도 마음을 붙이는 법이 없었다.
그는 특별히 성모 마리아를 깊이 공경하고 있었다. 성모님께서도 그런 그를 늘 전구로 보호하셨다. 그가 도미니코회에 들어가는 데도 성모님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토마스가 14세 때 부모 몰래 베네딕토회를 떠나 도미니코회에 입회했다. 당시 도미니코회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탁발 수도회였다. 부모는 아들이 미천한 수도회에 입회한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부모는 아들이 고위 성직자가 될 수 있는, 전통 있는 몬테카시노의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어머니 테오도라는 즉시 아들을 만나기 위해 나폴리로 갔다. 당장 끌고와 베네딕토 수도회에 다시 보내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마침 토마스는 그때 장상의 명령에 의해 파리로 간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이제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아들을 다시 불러 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태세였다. 어머니는 토마스의 두 형을 시켜서 토마스의 뒤를 쫓게 했다. 결국 토마스는 형들에게 붙잡혔고, 집으로 끌려왔다. 부모는 그를 성에 가두고 일절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감금생활을 한 것이 1년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성모님께 전구를 청했다. 전구는 받아들여졌다. 그는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성을 탈출할 수 있었고, 결국 도미니코회에 다시 입회할 수 있었다.
이후 그의 학덕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하지만 그는 책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그는 십자가를 가장 좋은 서적이라고 칭하며, 묵상하고 하느님의 비추심과 은총을 받았다. 높은 학덕에도 불구하고 자만하지 않았으며 삶의 모습도 완벽한 수도자의 모습이었다. 그러자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과 순명, 정결과 청빈,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덕의 거울로 존경을 받았다.
그렇게 학업에 매진하던 그는 독일에서 신품성사를 받았고 유럽 각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252년에는 파리 대학에 초청을 받아 학문뿐 아니라 도덕에 관해서도 가르치게 되었다. 이후 1256년에는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259년부터 68년까지 로마에서 교황청 소속 학원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탄생하는 것, 그리고 착수된 것이 유명한 성체 찬미가와 신학대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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