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하교시간.
남자아이 너댓이 우줄우줄 서 있다. 그냥 지나치려다 어째 낌새가 이상해서 발걸음을 늦추고 아이들이 하는 양을 슬쩍 넘본다. 또래 중에 대장쯤으로 보이는 녀석이 한 아이의 모자를 툭툭 건드린다. 모자 쓴 아이는 울듯한 얼굴로 두손으로 모자를 누르며 어깨를 웅크린다.
『야~ 영국거지, 오늘 야구모자 멋진데 어디서 주웠냐?』
영국거리조 불리는 아이는 벌서는 표정으로 또래들 속에서 엉거주춤 서 있다. 「야! 야!」로 친구를 불러대는 대장 아이는 몸피나 키는 커보이지 않지만 당차 보이고 눈매엔 심술기가 있어 보인다.
『얘들아 친구를 놀리면 쓰냐? 어서 집에 가야지』
한껏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서 내가 말했다. 대장 녀석은 소리내어 말은 안했지만 「왠 참견이야」싶은 떫은 표정으로 나를 빤히 본다.
『가자!』대장녀석은 영국거지 친구를 내버려두고 앞장서서 신발을 질질 끌며 걸어간다.
친구들에게 「영국거지」로 불리는 아이. 그 아이는 영국에서 전학을 온 경준이.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3년동안 영국의 동쪽 작은 도시 휄릭스트에서 살다 왔다.
해운회사에 근무하는 아버지 회사가 내려다 보이고, 일층으로만 지어진 예쁜 집들이 바다를 마주보고 옆으로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있는 바닷가 마을.
거기서 경준이는 학교에 다녔다.
얼굴 생김이 다르고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경준이가 그 곳에서 겪은 마음 고생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울에 와서 부딪쳐야 하는 일이 몇배나 어렵다는 걸 이젠 잘 알고 있다.
얼기설기 해진 스웨터의 팔꿈치를 곰 모양의 헝겊으로 덧대어 입고 갔던 날, 너무 쉽게 업어진 별명「영국거지」.
처음에 경준이는 자기의 별명이 영국거지였다는 걸 알아듣지 못했다. 그것이 얕잡아 보려는 별명이라는 것도.,
할머니와 이모를 자주 만나게 되는 것 말고는 서울 생활은 그저 심드렁할 뿐이었다.
경준이보다 키가 작고 귀여운 사이먼, 피아노 잘 치는 마이클, 이 다음 커서 결혼하겠다고 말해서 식구들을 웃겼던 사만다, 그런 친구가 언뜻언뜻 생각난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건 비겁한 짓이야. 신사가 할 짓이 아니지. 영국에서 들었던 얘기가 떠오른다.
『야! 넌 한국사람이 한국 말도 못 알아듣냐?』
경준이는 그 말이 참으로 싫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수업시간, 그래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들을 수 없어 속이 상한다.
『겨우 말이 통한다 싶으니까 돌아오게 되었어요. 학교 가는 게 재미없나 봐요. 아이들 속에 섞이지 못하는게 눈에 보여요. 요즘은 팽이 돌리기에 재미를 붙였어요. 아이들이 다니는 많은 학원 중에 팽이 잘 돌리게 가르치는 학원은 없냐고 물어요. 외국보다 우리 나라에서 소외감을 느낄 줄은 몰랐어요. 왕따라뇨? 그래서는 안되요!』
경준이 엄마의 말대로 그래서는 안되는 일, 따돌림 당하는 아이의 외로움이다.
청소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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