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거행되는 희년은 구약성서에서 규정한 희년의 개념과는 다르다.
고대 세계의 희년은 윤리-사회적인 효력을 보존하지 못하고 이상적인 전망으로 남게 되었다. 고대의 희년은 메시아이신 나자렛의 예수님 안에서 드러나고 나중에는 교회 안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옛 희년이 단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높고 완전하게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고대의 희년은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실현하실 진정한 해방』(「제삼천년기」 13항)을 예시하고 예고하는 섭리적인 역할을 한다.
구약성서에서 희년을 다루는 본문과 그리스도교의 희년 개념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교의 희년과 히브리 세계의 희년을 비교함으로써 희년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첫째, 그리스도교 희년은 예수님의 출생 연도를 기념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으나, 구약성서 히브리 세계의 희년은 기념일과 전혀 관련이 없다.
1300년 교회 안에서 처음으로 희년을 지낸 보니파시오 8세의 교서에는 예수님의 탄생 기념일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러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서 「제삼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re)에서 2천년 대희년에 특별 희년임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도 탄생 후 2000년은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이 두 천년기 동안 그리스도교가 수행해 온 걸출한 역할로 인해, 간접적으로는 전인류를 위해 오십 년이 되는 해를 「거룩한 해」로 정하고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저마다 제 소유지를 찾아 자기 지파에게로 돌아갈 것을 명한다.
따라서 히브리 희년은 과거의 일정한 시점에서 출발하지 않고 앞으로 건설해야 할 전혀 새로운 미래, 하느님의 뜻에 따라 불의와 고통에서 해방된 미래를 목표로 한다.
둘째, 그리스도교에서는 처음에 백년을 주기로 희년을 지냈으나(나중에는 50주년이나 25주년에 지내기도 했다). 히브리 세계에서는 상징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를 따라 50주년,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일곱 번의 안식년을 지낸 뒤인 49년이 되는 해에 희년을 시작했다. 『너희는 또 일곱 해를 입곡 번 해서, 안식년을 일곱 번 세어라. 이렇게 안식년을 일곱 번 사십 구년 이 지나서 일곱째 달이 되거든 그 달 십일에 나팔소리를 크게 울려라』(레위 25, 8) 구약성서의 희년이 시작되는 이 날은 화해의 축제날인 「속죄일」(「욤 키푸르」)이다.
셋째, 그리스도교 희년의 신학적 핵심은 전대사를 부여함으로써 그동안 지은 모든 죄와 그로 인한 벌을 모두 사해주고 영적 선물을 충만히 받게 하는 것이다.
이 전대사는 교도권이 규정한 바에 다라 성전을 순례하며 회개하고 기도함으로써 얻게 된다.
이와는 달리, 구약성서에서의 희년은 하느님이 주신 삼중의 계명, 곧 땅을 일구지 말 것과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며 땅과 집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을 지켜야 하는 해이며, 이로써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의도가 명확했다.
넷째, 그리스도교의 희년은 명확히 영성적인 차원을 지니며 하느님과 그리스도인 사이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영성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희년은 『하느님을 경외할 것』(레위 25,17)을 가르치면서도 당과 노예와 빚진자들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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