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대학교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한국인 교수. 평신도 동양인으로서, 여성으로서도 첫 교수로 이름을 올렸다. 현재 로마에서 동양과 관련된 석·박사 논문을 심사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교수이기도 하다. 덕분에 그레고리안대 외에도 안젤리쿰과 라테란대 등에서도 신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쉴 새 없이 석·박사 논문을 지도해왔다.
아시아교회의 토착화와 종교간 대화 관련 연구는 그의 가장 큰 관심사다. 이를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과정은 한국과 아시아교회뿐 아니라 보편교회의 영성 심화를 위해 씨를 뿌리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지난 7개월은 암투병의 시간이었다. 후학 양성에 혼신을 쏟던 중 느닷없이 맞닥뜨린 고통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를 학문으로서가 아닌 온 가슴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번호 ‘가톨릭인터뷰’의 주인공은 잠시 회복기를 갖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이탈리아 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선교신학대학·종교와문화대학원 이재숙 교수(마리아·55)다. 겸손과 사랑의 미덕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이 신학자는 현·전 교황들이 줄곧 강조해온 아시아 복음화와 아시아교회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신학연구가 어렵지 않냐고요? 하면 할수록 하느님 사랑의 빛을 더욱 밝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학문의 매력입니다.”
이재숙 교수에게 있어 신학적 정진은 신앙의 여정과 매한가지다.
독실한 가톨릭신앙을 이어온 집안 환경 덕분에 이 교수는 어릴 때부터 교회 안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해왔다. 젊은 시절엔 ‘성서공부’ 봉사를 하면서 성경 연구에도 빠져 있었다. 그러다 로마에서 유학했던 유흥식 신부(현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의 권고로 신학공부를 결심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로선 다소 뜻밖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외국어에 대한 힘겨움 덕분에 겸손을 배웠고, 기도에 대한 확신도 더욱 강하게 쌓을 수 있었다. 신학공부를 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진리를 알고 싶은 열정에 빠져들었다. 그레고리안대 교수 제안을 받고 로마에 자리잡은 지는 벌써 19년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학문에 대한 노력뿐 아니라 후학 양성에도 철저하게 투신, 최고의 논문 지도교수로 평가받고 있다.
이 교수는 초월적 인간학과 화엄사상을 비교, 동양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계시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었다. 이후 뉴에이지 발생과 원인, 과제 등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하면서 한국교회 안팎에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최근 그의 관심을 송두리째 차지하고 있는 분야는 아시아 신학과 문화, 종교다. 왜 아시아인가?
세계가 다원화되면서 아시아의 종교들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불교는 서양인들이 느끼는 영적 공허함을 개인적인 체험 차원에서 채워주며 관심을 모은다. 특히 이민자들이 크게 늘면서, 이들이 문화적인 만남과 인간적 교류를 통해 각 종교의 가르침과 심성, 영성 등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러한 변화가 전 세계가 아시아에 관심 갖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보편교회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아시아교회에 대한 관심을 강조해왔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교회는 아시아의 일부이며, 아시아는 교회의 가려진 기둥이라고 역설한다. 낮은 선교율로 인해 무한한 복음화의 가능성을 품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그레고리안대 교수직을 제안 받았을 때 이러한 아시아교회의 역량과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고, 아시아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라는 판단으로 선뜻 응했었다.
“아시아 주교대의원회 후속권고인 ‘아시아교회’는 제 삼천년기 복음화의 주역은 아시아교회라고 밝히고 있으며, 문헌 발표 이후 아시아 종교와 문화 등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시아의 전통과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주인공인 아시아인들조차 잘 모르고 있으니까요.”
실제 많은 유학생들은 유럽에 유학을 와서야 다시 아시아 즉 자기 나라의 종교와 문화를 올바로 인식하고 관심을 갖게 됐다고 고백한다.
“더구나 아시아에서는 아직도 성령에 대한 개념이나 성체신비,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 등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는 바탕이 부족합니다. 때문에 아시아 신학자들이 아시아에서 참된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도록 학문·영성·실천적 방법론을 꾸준히 연구해야 합니다. 제가 제자들과 함께 해나가야할 과제도 이것입니다.”
이 교수는 아시아 전통 종교 안에서 나타나는 영성과 철학, 삶의 방향에 대해 올바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양의 여러 사상들과 교회의 가르침은 결코 반목하지 않는다. 우리의 사상을 올바로 아는 것은 더욱 깊이 있고 올바른 신앙을 갖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교수는 신자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론만이 아닌 사목적 실천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즉 성직·수도자들이 먼저 겸손하고 성실한 삶을 통해 생활 안에서 신자들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느님을 섬기는데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가 권위의식입니다. 이를 성찰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교육이 관건입니다. 특히 평신도들이 탄탄한 의식을 갖추고 본연의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선 여전히 교육이 지속돼야 합니다. 그리고 이 교육은 평신도들만이 아니라 사제와 수도자, 주교들이 모두 함께 받아야 합니다.”
외국 교회에 비해 평신도들이 교회를 비평하는 목소리를 듣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의견이다. 특히 이 교수는 “신학만 해도 이젠 더 이상 성직·수도자들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평신도 전문가들이 많이 배출되는 만큼 서로 더욱 겸손하게 나누고 함께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로 내어줌으로써 사랑을 이룹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 삼위일체 신비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