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이주민들은 힘겨운 노력을 통해 각자 삶의 자리에 뿌리를 내리며 그들만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 2010년 하반기에는 한국 땅에 삶의 터전을 꾸린 이주민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진정한 ‘다문화’ 세상을 찾아가 본다. 2009년 문을 연 광주대교구 이주민사목부(담당 박공식 신부) 소속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에서 그 첫 번째 무지개 열매를 만나봤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5일,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과 계림동 경계에 자리한 대인시장을 찾았다. 그곳에 다문화 여성들의 땀과 노력이 깃든 무지개 열매가 맺히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서다.
옛 광주역(1922~1969년)과 터미널(1975~1992년) 덕에 항상 인파로 붐볐다던 대인시장 골목은 한산했다. 도시계획에 따라 역과 터미널이 이전했고, 근처에 위치했던 농협공판장도 자리를 옮기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어졌기 때문이란다. 그 시장 골목 한 귀퉁이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란 간판이 보였다. 다가가보니 ‘다문화창업프로젝트’란 작은 글귀가 보였다. 그곳이었다. 광주지역 다문화 여성들이 당당한 한국의 어머니로 서기 위해 함께 노력하며 무지개 열매를 맺어가는 곳.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는 다문화 의식주에 관한 문화상품을 제작·판매하는 가게이자, 다문화 여성의 취업을 위한 광주대교구 이주민사목부의 실업 교육 기관이다. 2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베트남, 일본, 몽골, 중국, 러시아에서 온 20명의 다문화 여성들은 각자의 색깔과 개성을 담은 의식주 관련 문화상품을 만들며 취업으로 가는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시장을 오가는 상인들이 들려 갈 수 있는 ‘카페’도 열었다.
▲ 수강생들이 만든 문화상품 중 단연 인기있는 작품은 천연염색 손수건. 각 국가별 문양이 들어간 이 작품들은 지인에게 선물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옆으로 보이는 것은 노트북 파우치와 수첩 커버 등.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 기획안을 만들었고, 현재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는 양용(카타리나·광주 지산동본당)씨의 설명이다.
“똑같은 가방을 만들더라도, 출신 국가에 따라 고르는 천과 디자인, 전체적인 느낌이 모두 다릅니다. 한국식을 무조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개성을 그대로 담아 작품을 만들도록 지도하고 있어요.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의 문화적 다양성은 광주 지역에선 이미 인정을 받고 있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선정됐고 2014년 완공 예정인 아시아문화전당 건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광주광역시에 ‘다문화’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전문적인 역량을 갖춰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2년째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2008년부터 ‘예술’을 테마로 해 이름을 ‘대인예술시장’으로 바꾸고 제2의 부흥을 시도하고 있는 대인시장 내에 ‘의식주’를 주제로 각종 문화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선도적이며, ‘일방적 문화 획일화’가 아니라 ‘개방적 문화 다양화’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긍정적이란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
2009년 기초반을 거쳐 2010년 심화반 교육을 받고 있는 20명의 다문화 가정 여성들은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존감’과 ‘자신감’을 높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양용씨는 “2009년 교육 평가회에서 수강생들은 본국의 음식이나 문양 등을 마음껏 펼칠 수 있어 좋았고, 특히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베트남에서 온 리우니뮈(26)씨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가 사회적 기업으로 승인되면 월남쌈, 춘권, 쌀국수 등 베트남 음식을 만들어 팔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을 것”이라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몽골에서 온 통갈락(26)씨도 “가방, 차 받침대, 파우치 등에 몽골 만의 색깔을 담은 내 작품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면서 창업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운영 2년째 접어들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는 수강생들 손으로 직접 꾸몄다. 소파나 탁자 등 인테리어 하나하나에 수강생들의 숨은 손재주가 깃들어 있다. 의·식·주 별 동아리도 만들어 교육이 없는 날에도 자발적으로 가게에 나와 신 메뉴를 개발해 음식 품평회를 하거나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등 창업을 위한 노력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각 국가를 대표하는 리더도 자연스레 생겨났고, 수강생 스스로가 강사가 돼 비즈공예, 각 국가별 문화 등을 소개하기도 한다.
양용씨는 “‘문화상품’이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을 ‘다문화’와 접목시켜 실제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교육하고 있다”면서 “상품 제작과 판매, 교육을 동시에 진행해 교육 수료 후 취·창업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공식 신부는 “지난해 광주 예술의 거리에서 토요일마다 열렸던 아트마켓에 상품을 내다팔았고, ‘20 레지던스 작가’로 선정돼 각종 문화상품과 음식을 선보이기도 했다”면서 “싸구려 재료를 이용한 저가 상품이 아니라, 소장가치가 있는 고품질의 문화상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내년부터는 예비 사회적 기업 승인 신청을 해 3년 후 사회적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면서 “다문화 여성이 진정한 다문화 세상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