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년가장이라는 말이 정말 부끄럽고 싫어요. 그 말은 「나는 불쌍한 아이입니다」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있는 것 같아서요.
잘못한 일도 없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지만 고개가 숙여지고 남에게 걱정어린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 것이 부끄러워요.
「소년소녀가장」이라는 호칭에는 힘겨운 생활 여건과 함께 무너진 가정을 떠올리게 한다.
선택의 여지 없이 떠안겨진 나이 어린 가장에게 지워진 짐은 어른들이 어림잡아 생각하는 그 이상의 고달픔이 있다.
윤상이, 그 아이의 불행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의 가출로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가출 이유가 무엇인지 어린 윤상이는 정확하게 모른다.
두 살 아래 여동생 윤정이와 아버지가 퇴근해 오실 때를 기다리다 저녁을 못 먹고 잠이 든 적도 있었다.
저녁마다 술을 나시고 들어오는 아버지가 불쌍해서 배고프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얼마를 그렇게 지내다가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윤상이 집으로 오셨다.
식구난 다시 4명이 되었고 아버지도 조금씩 안정을 찾으셨다. 엄마에 대한 아픔도 잊혀질 만했다. 그러나 불행은 쉬지 않고 오는 것인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너무 큰 절망이었다.
『니네 엄마 도망갔지?』
『엄마 아빠 없으니까 너희들은 고아지?』
이렇게 아이들이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발을 구르며 울고 싶은 윤상이.
아버지를 데려가신 것을 보면 세상은 공평하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 윤상이의 어른스런 주장이다.
요즘 일어설 때마다 「아구구」소리를 내시는 할머니가 공공근로 사업에 나가신다.
『할미가 돈 버니까 중학교 고등학교 다 갈 수 있어』
할머니의 그런 말씀을 들을 땐 등이 따뜻해지지만 마음은 아프다. 67세이신 할머니가 엄마처럼 말없이, 아버지처럼 훌쩍 윤상이 곁을 떠나버리실까봐 솔직히 걱정이 된다.
엄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윤상이는 엄마를 용서할 수가 없다.
아버지 교통사고도 따지고 보면 엄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윤정이도 엄마 얘기는 안한다. 그러나 밤에 잠든 윤정이가 엄마를 부를 때가 있다. 그것까지 나무랄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제 꿈을 말하라고 하셨나요? 저는 119구조대원이 되거나 만화가가 되고 싶어요. 소원이 있다면 우리 할머니가 좀 더 건강하셔서 오래 사시는 거구요. 동생 윤정이가 아버지 생각하면서 울지 않앗으면 해요. 나는 잘 울지 않는데. 내가 바라는게 너무 많은가요? 욕심을 많이 부리면 하느님이 도와주지 않으실 것 같아요』
윤상아! 네 꿈 하느님이 모두 기억해 주실거야. 그리고 소년가장이라는 말이 측은하고 불쌍하고 부끄러운 호칭이 아니라 대견하고 당당한 이름이라는 것. 이젠 너도 알았으면 한다.
니가 광고지 묶음 뒷면에다 그린 만화 정말 재미있게 보았어.
멋지고 여학생에게 인기도 많은 씩씩한 남자 주인공은, 보여주고 싶은 윤상이의 또다른 모습일테지?
그래, 그래야 해. 울음이 헤프지 않은 윤상이에게 박수를 보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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