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은 한국여기회와 여기애인상을 수상한 청소년들의 나가사키 순례를 동행 취재, 그들이 배운 여기애인의 정신과 순례 이야기를 전한다. 또 한국 청소년들과 일본 청소년들의 만남과 대화, 한마음으로 평화를 기원한 미사 현장 등을 전할 예정이다.
▲ 한국여기회 제1회 여기애인상 수상 청소년들을 비롯한 한국 순례단이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여기애인’을 실천하며 여생을 보냈던 ‘여기당’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나가이 다카시와의 만남
순례에 참여한 10명의 청소년들은 지난 6월 제1회 여기애인상 수상자로서 한국여기회(총재 이문희 대주교, 회장 최옥식)로부터 ‘일본 나가사키 성지순례’ 특전을 받았다. 이들은 지정도서 「사랑으로 부르는 평화의 노래」와 「나가사키의 종은 미소 짓는다」 가운데 한 권을 읽고 독후감을 써 응모했다.
‘남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했던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제정된 ‘여기애인상’.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이번 나가사키 순례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한국여기회 회원들과 청소년들은 8일 일본에 도착해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참혹하게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이들은 26성인 기념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선종할 때까지 머물렀던 ‘여기당’을 찾았다.
다다미 2장의 작은 규모인 ‘여기당’은 1948년 원폭에 쓰러진 사람들을 치료한 나가이 다카시 박사를 위해 사람들이 지어준 집이다. 박사는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의미로 이 집을 여기당으로 이름 짓고 전쟁의 어리석음과 핵무기 반대, 평화와 이웃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박지민(미카엘라·17) 학생은 “책에서만 접하던 나가이 다카시 박사를 잘 알게 된 뜻 깊은 시간이었다”며 “피폭된 그의 아내 미도리가 갖고 있던 묵주가 녹아 붙어버린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청소년들은 여기당 옆에 위치한 나가이 다카시 기념관을 둘러보며 평화에 대한 그의 간절했던 염원과 남을 위해 자신을 버렸던 희생정신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다.
살아있는 여기애인 정신
▲ 순례 참가 학생들이 조선인 신자들에 의해 세워진 로렌소(라우렌시오)성당 400주년 기념미사에 참례해 기도를 바치고 있다.
특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남을 위해 자신을 대신 희생, 또 다른 ‘여기애인’의 정신을 보여줬던 콜베 신부를 기리는 ‘성 콜베 기념관’에서 청소년들은 많은 감동을 받은 듯했다.
김다은(안나·14) 학생은 “남을 나보다 사랑하는 것은 힘들지만, 그 사람에게 나를 온전히 내어 주는 것이야말로 사랑임을 알았다”며 “아직은 힘들겠지만 작은 것부터 실천하다 보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9일 우라카미성당에서 일본인 신자들과 함께 봉헌한 ‘평화기원미사’, 10일 임진왜란 당시 포로로 끌려와 조선인 신자들이 세운 ‘로렌소(라우렌시오)성당 400주년 기념미사’에서도 청소년들은 두 손에 작은 기도를 모았다.
청소년들은 각 미사에서 일본인 신자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봉헌했으며, 특히 로렌소성당이 조선인 신자들의 손으로 건립됐다는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느꼈다고 밝혔다.
순례에 동행한 이문희 대주교는 “여기애인의 정신을 함께 지키고 새겨나가려고 할 때 그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젊은 학생들이 남을 자신같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모습의 세상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 나가사키대교구장 다카미 미츠아키 대주교가 김성태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신부에게 환영 선물을 건네고 있다. 가운데는 한국여기회 총재 이문희 대주교(전 대구대교구장).
▲ 로렌소성당 설립 400주년 기념미사에 참례한 일본 신자들이 기쁨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 나의 나가사키 순례기
- 김혜인(레아·경주 근화여고 3년·여기애인상 고등부 최우수)
“다카시 숨결 느끼며 하느님 만났습니다”
다카시 박사 살았던 여기당을 둘러보니 그의 모습 보는 듯해
▲ 여기당에서 김혜인양.
상을 받아 함께 순례를 떠나게 된 10명의 아이들. 공항에서 만난 우리는 모두 설레보였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부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갈 때 하느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가지고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짧은 비행을 마치고 눈앞에 마주한 일본. 일본에서의 첫 번째 여정은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으로 시작했다. 원폭의 피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실제로 보고 피부로 느낀다는 것이 이렇게나 가슴에 와 닿을 줄이야. 미사에서 늘 하는 ‘평화의 인사’를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하리라’는 작은 다짐을 했다.
26성인 기념성당을 거쳐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살았던 ‘여기당’에 도착했다. 가장 궁금해 하던 곳이다. 우라카미성당이 정면으로 보이는 여기당. 성당을 향해 기도하는 박사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여기애인’을 실천한 하느님스러운 사람, 박사가 머문 여기당은 어떻게 보면 작은 집일 뿐이지만 그의 정신이 담겨 있는 곳이었다. ‘남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라’는 여기애인의 마음을 한 번 더 가슴에 새기며 성지순례 첫째 날을 마쳤다.
둘째 날,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순례를 시작했다. 한국에서부터 걱정하던 일본 학생들과의 ‘교류 시간’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한국 근현대사 일제강점기를 배우고 있는 나로서, 일본 학생들과 교류를 한다는 것이 조금은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걱정스럽게 시작한 교류 프로그램은 너무 재미있게 전개됐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며 껄끄러움도, 걱정도 눈 녹듯 사라졌다.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주님을 믿는 마음’은 같아 마음이 잘 통했다. 이것이 과연 주님의 힘이 아닐까.
이어 우라카미성당의 평화기원미사에 참례해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성체를 모시기전 이마, 입술, 가슴에 십자가를 그었다. 우리는 국적은 서로 다르지만 머리로는 주님을 생각하고, 입술로는 주님을 말하며, 가슴으로는 주님을 믿는, 영원한 삶을 믿는 사람들이다.
다음 날, 임진왜란 때 잡혀온 조선인 포로들이 세운 ‘로렌소성당 400주년’ 기념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인근 나카마치성당으로 향했다. 미사를 봉헌하며 타지에 포로로 잡혀와 성당을 지은 우리 조선인들의 강한 신앙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성지순례를 통해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늘 실패나 포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순교자들의 신앙의 힘이 죽음의 두려움까지 이겨내는 것을 보고 실패나 포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순례는 나의 신앙심에 거름이 됐고,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한 ‘떡잎’이 됐다. 순례를 출발한 날 비행기에서처럼, 또다시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신앙심의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돌아갈 때 당신을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가지고 갈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