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아 있는 옛날 성당 터의 크기는 약 80여 평 남짓 되었을 것 같다. 언제 그 성당이 허물어 졌는지 알아보지 못했다.옛날에는 여기가 성당 마을이라고 불리었다고 하는데 200여 호 되는 마을 전체가 천주교 신자들의 집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시작된 천주교회가 용정으로 연길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1992년 과기대 교환 교수로 이곳에 나오셨던 선교회 고문직을 맡으신 김현욱(요한 보스꼬) 선생께서 여기에 옛날에 성당이 있었다는 말을 들으시고 찾아오시어 담배 농사를 짓고 계셨던 노인을 만나 여기 성당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십니까하고 물었더니 좀처럼 말을 않으려고 해서 겨우겨우 달래서 알아보니 그 자신이 신자라고 말하면서 여기 지금은 신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소위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무서운 박해를 당했던 당시의 신자들이 모두 신앙을 버리고 떠나갔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 부락을 중심으로 해서 새롭게 선교 활동을 시작한 김현욱 선생 일행은 아쉬운대로 옛날의 이 성당 터 1,200평을 매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30여 평의 공소 건물을 지어 놓은 것이었다. 언제끔 이 땅에 다시 신앙의 자유가 주어져서 옛날의 그 성당을 다시 지을 수 있을까 함께 기도하면서 감격스러운 미사를 마치고 다시 보고자 인사를 나누고 돌아왔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이 땅에 이주하였던 장인석, 박인덕 두 할아버지께서 여기에 정착하시고 우물을 파셨다고 해서 여기 이름이 용정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곳이다. 바로 이 자리에 성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 여기에서도 지난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성당이 문을 닫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 굥정의 성당은 거의 움직임이 없다고 한다. 여기에 머무르시던 수녀님들도 모두 연길로 자리를 옮기셨고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이동호 아빠스님께서 몇 년 전에 성당을 지으셨는데 오랫동안 사용을 하지 못하다가 요즘에 와서 주일 집회를 하고 있다고 하는 데 잠시 들렀지만 아무도 만날 수가 없어서 그냥 지나서 돌아왔다.
오후 4시에 연변 과학 기술 대학을 방문하도록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연길 성당에 먼저 들리기로 하고 연길 성당을 찾아갔다. 성당이 너무 좁아서 2년 전에 제대 위치를 바꾸면서 확장 공사를 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여기서는 선교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본당 신부님으로 계시던 엄태준(아브라함) 신부님께서 뇌종양 수술을 받으시고 지금 휴양중에 계시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매일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주 반갑게도 여기에서 금년 중에 사제로 서품 받으실 김 필립보 신학생을 만나서 여러 가지 중국 교회의 현실에 대하여 좋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특별히 지하 교회의 현실에 대하여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기쁨이었다. 부디 좋은 사제가 되어 새롭게 일어서는 중국 교회를 위하여 큰 일을 해주기를 부탁하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연변 과학기술대학으로 총장님을 찾아갔다.
서울에 있는 소망 교회에서 중국 선교를 목적으로 이 대학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선교활동은 일체 금지되어 있으므로 다만 대학 기능만을 다 하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어느 날엔가 복음 선포의 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총장님 방으로 올라갔다. 양 회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간 총장님 방은 너무나도 검소하여 오히려 놀라게 하였는데 작은 체구의 김진경 총장님은 모시 바쁘게 책상에서 일을 하시고 계셨다. 저희가 들어가자 반갑게 맞아 주셨다.
지난해에 북한을 방문하고 나오시다가 보안대에 끌려가시어 고생하신 일부터 말씀을 나누었다. 총장님은 당신께서 겪으신 평양 사건을 말씀하여 주셨다.
『곽선희 목사님과 함께 공항에 나왔는데 저는 좀 따로 보자고 하더니 데리고 들어와서 보안대에서 조사를 받았지요.간단히 끝날 줄 알았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조금 걱정스러워졌어요. 얼마 후에 내가 순교하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솟구쳐 올라오더군요. 그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기쁨 때문에 순교자들이 웃으면서 목숨을 바쳤구나. 얼마나 큰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더군요. 그러한 상황에서 감사하는 기도 중에 매일 매일을 지냈지요. 42일 동안 조용하게 지내면서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묵상하는 중에 어느 날 나가자고 해서 이제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공항으로 데리고 나오더니 출국시켜줬어요. 하느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는데 42일이 걸렸는데도 그 사람들은 끝내 알아듣지 못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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