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왕립시본당(주임=이봉우 신부) 한견에서는 한 달에 한번 조그만 소란(?)이 인다. 구수한 북한 사투리가 정겹기까지 한 이 소란의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칠팔십을 넘긴 할아버지들.
6·25를 전후해 3·8선을 넘어와 스스로를 3·8 따라지라 부르는 이들 할아버지들의 모임이 처음 생긴 것은 지난 91년. 북한이 고향인 본당 신자 중 3·8선을 직접 넘어온 1세대들로만 꾸려진 「통일기원회」는 3·8일을 더한 11일에 매달 모임을 가지며 성당을 또 다른 세상으로 만들어낸다.
『이 모임에 들어오려고 하는 이들도 많지. 그렇지만 우리같은 1세대가 아니면 솔직히 누가 속속들이 우리를 이해할거야?』통일기원회 열다섯 할아버지들 대부분의 생각이다.
모임의 좌장격인 박원모(요한·86) 할아버지. 모임의 최고령자이기도 한 그는 최근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엔) 세상이 뿌앴지. 짐작을 하고 걸어다니니까 (내가) 딱하더라구. 고향 땅도 못보고 갈 것 같은데 지금 살고 있는 식구들이라도 눈에 담아 놔야지』
1·4후퇴때 부인을 비롯한 다섯 식구를 모두 이북에 남겨 놓고 혈혈단신 월남한 박할아버지는 자신의 발걸음이 되돌릴 수 없는 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북에 있는 식구들이 생각나 주먹밥도 목에 걸렸디…』
월남해 남한에서 가정을 꾸린 이춘택(요셉·75) 할아버지는 네 딸을 낳고 독자인 아들마저 수도원에 보낸 이. 황해도 황주가 고향이라는 이 할아버지는 나 몰라라 하는 정부에 불만을 토로한다. 『자기들은 몰라. 너무도 몰라. 그래도 알려고도 한해. 자신들이 겪지 않았다고…』
자신의 고향 산천 얘기를 자랑스레 늘어놓다 회한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던 여성구(마티아·78) 할아버지는 『내 탓이지. 모든 게 내 탓』이라며 뜻 모를 한탄을 한다. 그러나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남북한의 모습이 분단과 아픔의 오늘을 이어가는 근원임을 여할아버지는 점잖게 타이르고 있었다.
『우리 예기는 묻힐 수도 있고 아무도 모를 수도 있어 . 그러나 사람이 살다 가면 어딘가에 흔적이 남기 마련이야. 이 흔적을 그냥 흘려버리면 또 다른 아픔이 생기기 마련이란 걸 알아야지』
저마다 사연을 지닌 통원회 할아버지들은 자신들의 아픔이 자신들만의 것으로 묻혀버리는 것을 가장 아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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