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공경하올 김수환 추기경님!
한국교회의 수장으로 격동의 세월 속에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헌신해 오신 당신의 모습이 오늘, 너무 그립습니다. 군부독재 회오리 속에서 유신헌법에 맞서 인간의 권익과 평화를 세우셨으며 눈앞의 이익을 위해 야합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인들에게 호통과 쓴소리를 마다않으시고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의 뺨을 어루만져 주신 당신은 참 어른이셨습니다.
종교인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내 것이 소중하면 상대방 것도 존중해야 한다는 배려를 일깨워 주셨으며 아파하는 민중의 손수건이 되어 주신 당신은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참된 종이셨습니다.
당신이 살아계셨다면 용산참사로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어루만져 주셨을 것이며,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저들에게 분명한 도리(道理)의 옳고 그름을 깨우쳐 주셨을 것입니다.
당신이 계셨다면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들의 안식처이며 민주주의 성지로 명명되는 명동성당의 들머리에서 생명과 평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자식 같은 사제들을 밀쳐내고 몰아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시고자 소탈하시고 어른아이같이 순수하셨던 당신이 안 계신 오늘의 우리나라는 너무나 많은 거짓이 판을 치며 진실이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군부독재에 맞서 최루가스를 마시며 참된 민주화를 위해 소리 높여 울부짖던 청년들이, 오늘은 정치권력 앞에 읍소(泣訴)하고 자주외교의 신뢰를 상실한 채 주변국가로부터 외면당하며 북한과의 긴장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농민들의 땀과 노력으로 일궈낸 쌀은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외면한 채 동물의 사료로 둔갑(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김 추기경님! 이 시대에는 아무도 따끔하게 야단을 칠 어른이 없습니다. 제발 민주주의가 퇴색하지 않고 이 민족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국민이 깨어나게 해 주시고 오만한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도록 힘을 주십시오. 이 나라의 모든 정치인들이 현실을 올바로 직시하며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 없도록 힘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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