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종의 책이 쏟아진다. 교회에서도 여러 출판사들이 매달 적지 않은 책을 찍어낸다. 인쇄문화가 쇠퇴하리라는 예측이 무색하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책의 종수와는 어울리지 않게 우리나라 국민과 천주교 신자들은 책을 읽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정이 이러한데 신자들에게 신심서적 또는 교회서적 외에 다른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것은 사치인 듯 보인다. 그러면 신자들은 신심서적이나 읽고 일반인들이 읽는 책은 엄두도 내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심서적은 읽지 않아도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거나 재테크 안내서를 읽는 신자들은 흔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교회에서 금하는 책들도 재미로 읽기도 한다. 교회에서 위험하다고 판정한 책들도 신자들이 많이 읽었다. 청년층으로 내려갈수록 이런 경향은 강해진다. 이럴수록 신앙서적을 읽히는 것이 필요할 듯도 한데, 필자는 그럼에도 굳이 일반서적도 같이 읽자고 주장하려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진 그리고 양식을 가진 신자들이 필요하다. 앞으로 이러한 필요는 교회의 역할이 한국사회에서 커질수록 더 커질 것이다. 교회 안에만 갇혀서 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소홀히 하다보면 현재 비난받는 특정종교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일반 출판사에서 찍어내는 책들 가운데서도 좋은 내용이 많다. 신자들은 책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소설 모두 신자가 아닌 이들이 만든 것을 보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콘텐츠를 교회 외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 것만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깥에 있는 것들을 눈썰미 있게 골라 보거나 읽을 수 있는 일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러면 이런 내용들을 어떻게 잘 골라낼 수 있을까?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에서는 교회 안팎의 책들을 골고루 읽고, 넓게는 미디어 전반으로 확대해 우리의 시각으로 세상을 읽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가톨릭 독서포럼’을 운영하고 있다. 교회 안에도 독서 포럼이 여럿 존재하고, 다들 잘하고 있지만 모두 교회서적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아쉬웠던 탓이다. 포럼에서는 먼저 교회 밖의 책들을 가톨릭 신앙의 눈으로 선별하여 신자들에게 소개하는 방법을 찾고자 여러 방식으로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직접 책을 출판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았지만 방대한 지식과 정보량, 자본동원 능력을 고려할 때 기존 출판물들을 선별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 판단하였다. 이렇게 양서를 선별하고, 한편으로 교회의 권고에도 아랑곳 않고 읽게 되는 책들의 경우에는 친절한 안내를 덧붙여주는 것이 무조건 읽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 현명한 방법이다. 여기에 덧붙여 가톨릭의 고전과 신간들도 선별하여 서평, 독서 안내를 담아 소개하려 한다. 그러나 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우리의 시각과 입맛에 맞는 책을 고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격주로 한 번씩 주제를 정해 전체적인 현황을 파악하고, 그 다음 영역별로 양서를 선택하여 읽고 독서 방향을 안내하는 글을 쓰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후에는 영화, 드라마도 포함하여 명실 공히 가톨릭 미디어 비평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는 책을 좋아하고 전공을 달리하는 한가문연의 연구이사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포럼의 방식이 구체화되는 대로 널리 홍보하여 많은 분들을 초대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 포럼의 결과를 ‘가톨릭 북 리뷰’ 나중에는 ‘가톨릭 미디어 리뷰’라는 이름으로 웹진을 발행할 계획으로 있다.
그동안 교회생활을 하면서 훌륭한 신자가 반드시 훌륭한 시민은 아니라는 것을 많이 경험하였다. 교회생활은 잘하는 데 시대의 요청에 대하여는 둔감한 경우를 많이 보았던 것이다. 무엇이든 교회적인 용어나 표현이 들어가야 신앙적이라는 생각들도 많이 접하였다. 그런데 정작 이런 분들은 가톨릭의 넓고 깊은 정통 사상들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매 시대 위대한 가톨릭 지성들은 그 시대와 소통하였고, 신앙의 지혜로 시대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들은 풍부한 식견과 시대의 징표를 읽어낼 수 있는 예리한 신앙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눈은 저절로 키워진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세상과 소통하는 훈련을 통해 얻은 것이다. 또 하나 요즘 들어 과제로 생각하는 것이 가톨릭의 시각으로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평신도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신자들은 많지만 가톨릭의 눈으로 이 세상 사람들도 긍정하고 동의할 수 있는 의견을 제시하는 신자들은 매우 드물다. 일본교회는 숫자는 적지만 이렇게 인정받는 신자들이 많다. 복음화 제3세기에는 이런 신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교회도 잘 알아야 하지만 세상의 흐름을 꿰뚫을 수 있는 안목도 필요한 것이다.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힌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기억한다면, 무엇이든 교회 안에서만 다해야 한다는 생각도 벗어 버려야 한다.
‘가톨릭 독서포럼’은 특정 단체를 선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독서사목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그리고 신자들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면서 교회 안에서 신자들에게 문을 걸어 닫는 단체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신자에게 이 모임을 개방하고 있다. 앞으로 좋은 책을 골라 읽고 소개하려는 이 모임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cafe.daum.net/cakc 한가문연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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