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등학교 2학년 둘째딸이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기에 무슨 일인지를 물었더니, 학내 독서토론 동아리 ‘역지사지’에서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발제를 맡아 준비하고 있단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고 내가 고등학생 때에는 읽을 엄두도 내지 않았을 책이다.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닌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문학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예비신자 교리반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교리를 가르쳤던 보좌신부의 권유로 본당 대학생회에도 가입했다. 그 무렵 대부분 대학생 모임이 그랬듯이, 매주 모임 때마다 우리는 한완상, 리영희, 박현채 교수 등 해직교수들의 책을 읽고 토론했다. 낯선 개념과 용어가 많아서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서로 토론하고 선배들의 도움말을 들으면서 하나둘 의문이 풀리곤 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참여해온 다양한 독서토론모임은 내게는 가장 소중한 배움터였다.
몇 년 전 내가 몸담은 우리신학연구소는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와 공동으로 ‘초록교회 만들기’ 연구를 진행했다. 본당 활동이 활발한 사례도 연구했는데, 응암동본당 환경사도직 ‘하늘땅물벗’은 환경 관련 책 읽기 모임을 몇 년째 하고 있었다. 대부분 부부가 함께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모임이 지속되고 있다고 하니 8년째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본당에서 이 같은 독서토론모임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요즘은 가톨릭대학생회에서도 독서토론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독서토론활동의 부재와 가톨릭대학생회 활동의 침체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물론 책 읽기는 혼자서 할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혼자 읽는다. 하지만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배운 점, 떠오른 영감 등을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면 좋다. 최근 「독서일기」, 「청춘의 독서」, 「독서」 등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정리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한두 권 읽어보면 자신만의 정리 방법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나만의 독서일기를 쓰더라도 가장 좋은 것은 가까운 사람들과 독서토론모임을 갖는 것이다. 식구도 좋고, 형제도 좋고, 친구도 좋다. 같은 본당 교우, 반모임 신자들도 좋다. 누구든 정기로 만나는 사람들이 있으면 모임 성격에 맞게 책을 정해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나는 최근 한 가지 벌이고 싶은 일이 있다. 한 달에 한 권 함께 읽을 책을 정해서 읽는 모임이다. ‘일월일책’(一月一冊)이라고 모임 이름도 붙여보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독서토론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엄청난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고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청소년 책을 추천해주는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www.readread.or.kr) 등 다양한 책 추천 모임이 있다. 가톨릭교회 안에는 아직 이런 모임이 없다. ‘일월일책’ 모임이 성장해서 가톨릭교회 안에서 좋은 책을 추천해주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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