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가 80도는 될 듯하다. 바위 틈새로 삐죽 튀어나온 나무 뿌리들을 붙잡고 간신히 한발짝을 옮기는 윤신부의 등줄기가 땀으로 흥건하다. 긴장한 탓인지 온몸이 얼어붙는 듯 하다.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백두대간 등정코스 가운데서도 험난하기로 유명한 지름티재에서 희양산 구간. 정상이 지척인데…. 『만약 여기서 추락한다면, 누구 한사람 날 본 이도 없을텐테. 누가 날 찾아주지?』순간 온갖 상념들이 윤신부의 머리를 스친다. 거대한 벽처럼 다가서 있는 자연의 힘 앞에서 미물에 불과한 인간임을 새삼 절감하는 순간이다.
『산은 갈 때마다 두려운 곳입니다』
『진짜 신꾼들이 들으면 부끄러운 일』이라며 백두대간 종주의 의미를 애써 감추려는 윤신부의 얼굴에선 그래도 성취감이랄까, 극한 상황을 이겨낸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설레임이 묻어난다.
윤종관 신부(대전 도마동본당 주임)는 작년 5월 18일 백두대간 종주길에 올랐다.
『평소 산을 즐겨 찾았고, 산에 관한 이런 저런 자료들을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산경표(山經表)를 보면 오늘날 우리 민족의 터전이 그냥 형성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지면서 지역마다 고유의 문화와 삶이 형성됐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윤신부는 우리 고유의 산과 강 이름을 되찾고 이를 통해 민족 주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의 하나로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는 이들이 많다면서 그의 산행도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내비쳤다.
윤신부의 백두대간 종주 방식은 독특했다. 쉬는 날인 매주 월요일 출발해 하루 혹은 이틀에 걸쳐 일정 구간을 종주했다. 다음주엔 지난번 종주를 마친 위치에서 다시 시작했다. 이달초 종주를 마쳣으니 꼬박 1년하고 보름이 걸린 셈이다. 그동안 백두대간을 오르고 내린 횟수는 44회.
통상 한번에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윤신부는 등·하산을 반복하면서 주변 지형과 지역적 특성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다.
『종주를 하면서 왜 이고생을 하는가 싶어 포기하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너무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산을 내려오면 다시 가고 싶어져요. 산이 부른다고 할까요. 새벽 3~4시경, 동이 트면서 산마루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하늘과 갈려지는 순간 제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 칠흑같았던 산을 바라보며 두려움과 흥분이 교차하는 순간이죠』
성서에서 산은 흔히 하느님 현존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외경스러운 곳, 영험한 곳, 그래서 신체험이 가능한 장소, 기도하는 장소로 많은 이들이 산을 찾는지도 모른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죠. 가장 솔직해질 수가 있어요. 벌거벗은 나, 「참된 나」를 발견하게 되죠. 이런 체험은 곧바로 기도로 연결됩니다』
「神我일체체험」. 땀에 절은 옷들을 훌훌 털어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알몸(?)으로 산과 하늘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그곳이 곧 가장 은밀한 내적 체험의 공간이 된다. 『산림욕도 이만하면 최고수준』리아는 윤신부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백두대간 완주지점인 진부령에 섰을 때의 감회는 뿌듯함보다는 서글픔과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지나온 산들과 눈앞에 펼쳐진 북한땅의 산들이 똑같은 산이건만 갈 수가 없는 산이죠. 허리가 잘린 영도, 민족분단의 애통함을 그때처럼 절절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민족의 하나됨을 구호로써가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고 희구하게 되는 것이 백두대간을 종주한 이들의 한결같은 체험이라고 윤신부는 말한다.
윤신부에겐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한가지 작은 꿈이 생겼다. 통일후 북한교회(성당) 재건을 지금부터 준비하자는 것이 그것이다. 분단이라는 현실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전제가 되었다.
『한국교회의 한 본당이 예전에 생존했던 북한이 특정 본당과 결연을 맺었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 힘을 모은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준비할 수 있을 겁니다. 개신교에선 이미 상당히 진척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윤신부는 이런 뜻에 공감하는 이들과 모임을 결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함께 산을 타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그 마음들이 모여 이 사회에 작은 울림으로 번져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백두대간 종주에 나설겁니다. 진부령에서부터 거꾸로 시작할거예요. 이번엔 다양한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기 위해 순서에 상관없이 구간을 선별해 오를 생각입니다』
『충청지방을 감싸고 있는 금남·금북정맥에도 오를 것』이라는 윤신부는 『산을 내려오니 더더욱 산이 그립다』며 산행의 즐거움을 강조했다.
(042)527-3782 도마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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