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1821년 8월 21일 솔뫼서 출생.
성인은 일곱살 때 박해를 피해 골배마실로 이사갈 때까지 솔뫼서 살았다. 사진은 생가터와 우물.
②7살때부터 15살 유년시절.
성인은 신학생 후보로 뽑혀 마카오로 가기 전까지 이곳 골배마실에서 살았다. 사진은 골프장 한쪽에 초라하게 방치된 성인의 집터.
③ 1837년 6월 7일~1842년 5월 15일 마카오서 신학공부.
이곳에서 성인은 소년에서 조선교회를 짊어질 청년으로 성장했다. 사진은 마카오 카오에스공원에 있는 성인의 동상.
④1837년 8월과 1839년 4월 6일 민란으로 마닐라로 두 차례 피난.
마카오에서 1000㎞가 넘는 뱃길은 16세 소년에겐 십자가의 길이었다. 사진은 마닐라 근교 롤롬보이에 있는 성인의 사적지.
⑤ 1844년 2월말 조선 입국로 개척을 위해 훈춘 방문.
성인은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영하 30도의 훈춘을 방문한다. 사진은 훈춘에서 경원으로 가는 옛길. 성인도 이 길로 다녔으리라 추정된다.
⑥ 1844년 12월 15일 부제품.
소팔가자는 지금도 주민 95%가 신자인 뿌리깊은 교우촌이다. 1841년부터 1846년까지 5년간 조선교구의 임시 교구본부 역할을 수행했다. 사진은 부제품을 받은 소팔가자성당.
⑦ 1845년 8월 17일 상해 금가항성당에서 사제수품.
조국을 떠나온 지 만 9년만에 김대건은 조선 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고 한국교회 첫 사제가 됐다. 사진은 금가항성당에 있는 성인의 유해.
⑧ 1845년 8월 24일 첫 미사 봉헌.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조선입국 채비를 마친 후 상해 횡당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고 일주일 후 라파엘호를 타고 조국을 향한다. 사진은 횡당성당 내부.
⑨ 1845년 9월 28일 제주도 표착.
8월 31일 중국 땅을 떠난 성인 일행은 긴 항해 끝에 천신만고로 제주에 표착하게 된다. 사진은 라파엘호를 타고 있는 성인 일행을 묘사한 모형.
⑩ 1845년 10월 12일 익산 나바위 도착.
상해를 떠난 지 40일만에 성인은 사제로서 감격적인 첫 발을 조국 내륙 땅에 들여 놓았다. 사진은 황산포의 옛 모습.
⑪ 1845년 11월부터 1846년 4월 13일까지 첫 사목활동.
골배마실과 이웃한 은이공소는 성인의 첫 사목지로 체포직전 공식적으로 최후의 미사를 드렸던 곳이다. 사진은 은이공서 터.
⑫ 1846년 9월 16일 26세로 새남터서 순교.
『나는 천주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 합니다』형장에서 남긴 유언이다. 사진은 성인의 두개골 유해.
⑬ 1846년 10월 26일 이민식에 의해 미리내 안장.
순교한 성인의 시신은 40일동안 방치돼다 교구들이 몰래 훔쳐냈고 이를 미리내에 모셨다. 사진은 미리내에 있는 성인의 무덤.
⑭ 1984년 5월 6일 시성.
1857년 가경자, 1925년 복자, 1949년 한국 성직자들의 대주보가 되신 성인은 한국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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