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직을 맡고 있는 한국사학 만큼 한국천주교회사 연구를 사랑한 사람, 한국천주교회 창설부터 근현대 교회사의 화두 안중근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사 전반에 걸친 연구에 매진한 사람. 8월 말 퇴임한 조광(이냐시오) 교수를 26일 고려대 교정에서 만났다. 교수실의 책을 정리하던 그가 ‘명예교수’라는 새로운 명함을 내밀었다.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에 매진한 한국사학과 교수
인터뷰 요청에 주저하던 그였지만 퇴임 시점에서 그가 한국교회사연구 발전에 미친 중대한 부분을 정리하고 넘어가도 좋다고 여겼다. 퇴임소회부터 물었다.
“‘소회’라고 할 것까지 있겠습니까. 퇴임하면 자유로워지니까 하고 싶은 것을 하겠지요.”
1973년도 고려대 전임강사로 시작해 79~83년 동국대 교수, 83년부터 고려대 전임교수가 됐으니 올해로 꼭 28년이 됐다. 한국사학과 교수 가운데 천주교 신자인 교수는 여럿이지만 한국교회사 연구에 매진한 이는 드물다. 왜 ‘한국교회사’였을까.
“조선후기 사회와 사상을 공부하면서 그 일환으로 천주교 사상을 연구한 것이지요. 천주신앙과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역사는 ‘변화’라고 할까, 조선사회 변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창설 전후 상황에 대해 특히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전쟁으로 모두가 피란에 한창이던 1951년, 그는 부산 중앙성당에서 가족과 함께 천주교 신자가 됐다. 천주교와 한국사학과 더불어 인연을 맺으며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현재 한창 전개되는 ‘하느님의 종 124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 추진에 대해서도 역사학자로서의 의견을 물었다. 그는 ‘시복시성’ 자체보다 ‘우리가 변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변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합니다. 순교자들을 기억하면서 자신과 오늘의 교회가 성숙하고 변화하는 것이 진정한 시복시성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죠. 그 목표를 두고 시복시성을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사에서도, 교회사에서도 조광 교수와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바로 안중근이다. 조 교수는 실제로 안중근의 생애와 활동, 사상 등을 밝혔으며,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기념식과 학술대회 등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왔다.
올 1월에는 ‘안중근 동양평화학교’에서 ‘토마스 안중근 : 그 사상적 특성’을 주제로 특강을 열기도 했다. 당시 그는 그 자리에서 안중근을 가리켜 ‘신자들의 영원한 사표’라고 주장했다.
“안중근은 자신의 지성과 신앙과 행동을 일치시켰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됐죠. 신자들 또한 지성과 신앙, 행동을 일치시키는데 목표가 있으므로 ‘영원한 사표’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빛과 그림자인 역사
안중근을 비롯한 여러 한국교회사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 연구해야할 역사를 역사학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어떤 역사에도 ‘빛과 그림자’는 있다고 말했다.
“빛만 있다면 눈부셔서 죽고, 그림자만 있다면 깜깜해 넘어져 죽겠죠. 빛과 그림자를 같이 보아야 합니다. 한 측면만 바라봐서는 진실한 역사적 의미에 다가설 수 없죠. 모든 역사를 그대로 보고 그것을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는 시대는 변하는 것이고 새로운 변화상에 입각해 모든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기에 역사를 포함한 모든 교회사는 완성될 수 없는 ‘미완성’의 상태일 수밖에 없다.
“신학적인 입장에서 교회사는 하느님의 섭리가 지상에서 구현돼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사는 이것을 통해 인간에게 주는 교훈과 가르침을 얻어야 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거든요.”
‘신학’과 ‘역사학’으로서의 교회사의 차이를 일러주는 그는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그동안 교회사를 연구해왔다. 조선후기 천주교사 연구, 조선후기 사회와 천주교, 조선후기 천주교사 연구의 기초, 한국 근현대 천주교사 연구. 그가 천주교회에 관해 쓴 논문들의 수를 모두 다 옮길 수 없다.
2001년 펴낸 ‘역주 사학징의’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업적이다. 신유박해를 둘러싼 최대의 사료로서 형조에서 신자들을 신문한 기록인 사학징의를 그는 여러 주석을 달아 번역했다. 이로써 전국의 500여 명에 이르는 순교자와 신자들이 박해의 와중에서도 숨어서 거행한 전례방식, 일상 속에서의 하느님 경배 생활 등 삶의 면면이 담겨있는 생생한 기록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교회사를 포함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가는 요즘 세태에 대해서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신학적이건 지성적이건 간에 역사와 교회사에 대한 관심을 크게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역사연구 작업의 중요성을 깊게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해달라는 이야기지요.”
인터뷰 내내 그가 강조한 말은 단순했다. ‘역사’와 ‘교회사’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 그리고 그를 통한 가르침과 교훈. 역사를 통해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의 힘이 더욱 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가 준비한 앞으로의 계획도 ‘단순’하다.
“역사 공부를 하면서 주석 작업도 계속할 예정이고, 책 출판 작업도 준비해야죠. 다시 말하지만 역사를 통해 우리 자신을 성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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