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공통점이 뭘까요?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비워야 한다는 것이 같습니다. 불교의 핵심교리 중에 사성제(四聖諦)가 있습니다. 사성제의 출발점은 고통입니다. 태어남도, 늙음도, 병듦도, 죽음도, 만남도, 헤어짐도, 성취하지 못함도 고통이요, 만사가 고통이란 것입니다. 고통의 원인은 집착입니다.
즐거움을 탐하고 추구하는 갈애(渴愛), 살아남으려는 갈애, 삶에서 떠나고자 하는 갈애 등이 바로 그 원인입니다. 그래서 집착을 멸(滅) 하면 해탈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는 여덟 가지의 바른 수행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팔정도(八正道)입니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생명을 유지하고, 바르게 정진하고, 바르게 기억하고, 바르게 집중하면 도(道)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도 예수님을 옳게 따르기 위해서는 바로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릅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고통의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종교의 출발점도 고통입니다. 고통의 극치는 죽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에서, 최고의 고통인 죽음에서 우리를 다시 살리실 구원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먼저 자기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자기 자신을 얽매게 하는 모든 집착을 버려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여기에 비움의 참 의미가 있습니다.
비움은 자기의 욕망과 소유를 모두 버리는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까지도 짊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단순히 자기 자신을 완전히 비우기만 했다면 우리의 구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구원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교에서의 비움은 비우는 것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한 비움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물론 불교에서 말하듯 자기를 완전히 비우면 깨달음을 얻게 되어 남에게 큰 도움을 주겠지만,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것이 그렇게 쉽겠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교에서는 작은 부분이라도 지금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제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누고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그리고 남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쉽게 떠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그분은 축복이 아니라 십자가만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눔과 비움의 생활을 하지 않고 구원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구원은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작은 십자가라도 짊어져야 합니다.
좋게 보고, 좋게 생각하고, 좋게 말하고, 좋게 행동하는 것이 우리가 짊어지는 작은 십자가일 수도 있습니다. 생명을 좋게 살리고, 좋은 기도를 하고, 좋은 것을 기억하고, 좋은 것에만 모든 힘을 쓰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 꽉 채우는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해 넉넉하게 비우는 십자가의 삶이길 빕니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