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철 만난 귀신들
매년 여름이면 귀신들은 제 철을 만난다.
TV마다 납량특집으로 도배되고 극장가에는 공포영화가 내걸린다. 올해는 백화점에서 열리는 각종 공포체험이 빈번하다. 주말마다 공포영화를 상영하거나 귀신, 유령, 무협소설 등을 함께 모아 납량특집 도서전을 열기도 한다. 심지어 전쟁용 칼, 강시퇴치 부적, 단두대에 목 잘린 두개골을 전시하는 「세계공포체험전」이 마련되기도 한다.
귀신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곳은 역시 극장가와 비디오 가게. 97년 덴마크 영화 「킹덤」을 시작으로 공포영화의 인기가 되살아나면서 외화 뿐만 아니라 「퇴마록」, 「여고괴담」과 같이 국산 공포영화도 큰 인기를 끌었다. 8월에는 자살한 귀신들의 이야기인 「자귀모」가 개봉되고 일본의 유명 괴기소설 「링」도 영화로 나왔다.
「고스트」, 「전설의 고향」으로 이전보다 훨씬 괴기스러운 공포물을 선보인 TV도 다른 어떤 매체보다 대중적이라는 점에서 귀신의 창궐에 큰 몫을 한다. 한때 유행했던 다큐멘터리 형식의 귀신체험기들은 과거 비오는 날 골목길에나 만났던 귀신을 아예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PC통신에서는 더 현실감 있고 생생한 귀신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강렬한 자극을 원하는 신세대들이 자신들의 생활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거나 창작한 이야기들을 또래 청소년들 사이에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다른 어떤 이야기거리보다 더 섬뜩한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 연재된 이야기들은 곧잘 소설로 엮어지기도 한다. 영화로도 제작된 「퇴마록」도 이곳 출신이고 「퇴마요록」「퇴마대왕」,「마계마인전」등 아류들이 이어졌다.
시대 흐름 반영하는 귀신 이야기
사실 일상을 벗어나 짜릿한 공포를 맛보며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는데는 귀신이야기나 영화가 제격이다. 공포를 통한 피서는 과학적 근거도 있다. 공포를 느낄 때 흘리는 땀이 마르면서 열을 빼앗아간다. 이때의 땀은 더울 때 흘리는 것과 구분해 「정신성 발한」이라고 부른다. 심리적으로도 공포는 더위를 잊게 한다.
하지만 단지 더위만이 이 같은 공포, 귀신 신드롬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귀신이야기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하거나 기존의 것들에서 절대성을 찾지 못할 때 초현실적인 것에 탐닉한다.
귀신이야기가 세기말적 증후군을 보이기 시작하면 악마주의적 경향을 띠기 시작한다. 이는 음악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우리 나라에서 아직 악마주의를 표방한 가수는 없지만 미국의 한 악마주의 그룹의 음반은 수만장이 불법 유통됐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악마주의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는 이른바 뉴에이지 운동. 오늘날 대중문화 속에 뉴에이지적인 요소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악마주의까지는 아니어도 신비주의라고 할 만한 현상들은 꽤 자주 볼 수 있다. TV 드라마 「X파일」을 비롯해 과학으로 풀 수 없는 여러 가지 체험들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부쩍 늘었던 것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다.
청소년들 사이에 퍼졌던 환생과 귀신 신드롬은 소위 「분신사바」라는 놀이로 번지기도 했다. 중고생들이 하얀 종이 위에 손을 잡고 볼펜을 끼워 주문을 외우면 질문에 대해 저절로 종이 위에 답이 표시된다는 것이다. 이 놀이에 빠져 많은 학생들이 두려움과 공포로 잠을 못 잔다거나 정신병적인 증세를 보이는 등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됐다.
애당초 혼사를 앞두고 궁합을 보거나 길일을 택해 이사를 한다거나 점쟁이를 찾아가 미래를 살피고 부적을 받는다거나 하는 것들이 모두 이러한 신비주의의 한 형태이기는 하다.
하지만 세기말에 들어서서, 게다가 IMF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과 맞물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귀신과 같은 맹목적인 공포의 대상에 빠지는 것은 사회 전체의 건강 상태와 관련해 바람직하지 못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스도교의 귀신(?)
그러면 그리스도교에서 귀신은 어떤 존재인가. 귀신(鬼神)이라는 용어세 있어서 그 의미는 서양에서의 악령, 마귀 등과 의미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귀신 혹은 악령을 지칭하는 것은 「타락한 천사」로서, 성서 안에서 사탄, 악마, 마귀 등으로 불리운다.
「사탄(satan)」은 「반대하다」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에서 유래됐고 신약성서에서는 악마라는 의미인 디아볼로스, 마귀 혹은 귀신 등의 악령을 의미하는 다이몬 등으로 언급돼 있다. 사탄, 악마, 마귀, 악령, 귀신 등 어떤 이름이든 그 존재는 「인간을 위한 하느님 계획의 반대자」로 기능한다.
신약성서에서 사탄은 예수를 시험하고(마태 4,1), 하느님 나라가 자라는 것을 방해한다(마르 4,15). 사탄은 악령들의 왕인데 끈질기게 사람들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그 활동 영역은 그야말로 무제한이다. 베드로를 한때 자신의 세력권 안에 넣었고(루가 22,32), 예수를 팔아넘기도록 유다를 꼬드겼으며(루가 22,3 요한 13,27), 마지막날에는 하느님과 대항해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묵시 20, 2.7).
사탄은 특히 사람에게 들어가 그를 통해 행동할 수 있는데 그럴 때 이들은 「마귀들린 사람」, 혹은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라고 불린다. 이 마귀들림의 현상은 구마(exorcism)의 대상이 된다.
구마, 악령의 축출
구약시대 이스라엘에서 구마 행위가 행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고대 중동에서 구마는 성행했지만 성서상에는 이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다.
하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죽은 자의 혼백을 불러오거나(1사무 28,7~25), 문설주에 피를 발라 죽음의 사자가 오지 못하게 하는 일(출애 12,21~23), 나병환자가 요르단강에서 몸을 씻고 치유되는 일(2열왕 5,10.14) 등을 볼 때 구마행위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신약성서에서 질병의 원인은 악령으로 나타난다. 같은 시대의 유대인과 마찬가지였다. 예수 자신도 당시 유대인들이 병마를 내쫓아 질병을 치유한다는 것을 인정했고 스스로 구마를 통해 치유를 베풀었다.
예수는 말씀만으로 귀신을 위협하기고 하고 수많은 귀신들을 쫓기도 했다. 악령으로 하여금 사라에게서 나오도록 명령하고 침으로 귀머거리와 소경을 고쳤다. 병자를 만지거나 손을 얹음으로써 병마를 몰아내기도 했다.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권위로 악령을 쫓는다. 「예수의 이름으로」귀신을 내쫓는다. 예수를 따르지 않음 유대인도 예수의 이름을 빌어 귀신을 쫓아낸다. 구마는 원시 그리스도교의 선교에서 중요한 수단의 하나였다.
그리스도교에서 구마를 통한 질병의 치유는 악에 대한 승리로 이해됐다. 예수의 구마는 곧 하느님 나라 도래의 시발점이다(마태 11,4~6 : 12,28 루가 7,22~23 : 11,20). 최종적으로 사탄은 결코 하느님을 능가할 수 없다. 귀신을 축출하는 예수의 권능은 사탄의 능력보다 크며(마르 1,21~28) 결국 사탄은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로가 10,18 묵시 20, 20).
소외된 이들에 대한 해방과 구원
예수가 악령을 내쫓음으로써 치유한 병자들은 대개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었다. 나병환자, 악귀 들린 자들, 벙어리나 소경 들은 예외 없이 사회에서 밀려나 죄은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이다. 예수 시대의 민중들은 밖으로는 로마 정권에, 안으로는 지배계급에게 끊임없이 박탈당하고 억압받아야 해싿. 예수의 구마 행위는 바로 이런 사회적 현실로부터의 구원이었다.
■ 초점 / 세기말 증후군 ‘사탄주의’
19세기말 퇴폐풍조와 함께 번성
80년대 뉴에이지운동으로 확산
물질문명에 대한 거부감이 주 요인
「악마주의」라고도 불리우는 사탄주의는 일반적으로는 모든 긍정에 대한 부정과 악마적인 요소의 수용을 말하지만 특별히 그리스도교적 전승에는 하느님을 대적하는 절대적 악의 구현을 지칭하는 인격이나 원칙을 숭배하는 것을 말한다.
사탄주의의 기원은 정확하게 추적할 수 없으나 대개 17세기 「검은 미사」를 거행한 프랑스의 한 부인에 대한 재파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그후 19세기 프랑스에서 퇴폐적인 세기말 풍조와 함께 널리 알려지고 20세기 영국과 미국에서도 생겨났다. 1960년대 미국에서 「대항문화」를 계기로 번성하기 시작했고 80년대 뉴 에이지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면서 더욱 펴졌다.
오늘날 유럽과 특히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퍼져 온 사탄주의는 위법 행위를 자행하면서 널리 확산되고 있어 극히 우려되고 있다.
현대인들이 사탄주의에 가담하는 이유는 종교·윤리적으로 다양한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대중 속의 고독, 가족제도의 붕되, 종교심의 약화 등을 들 수 있다. 대체로 사탄주의에 빠지는 사람들의 경우 신비 현상에 대한 신앙보다는 오히려 물질문명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크다.
가톨릭 교회에서도 사탄주의에 대한 우려를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다. 교황청에서 발간하는 일간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지는 97년 사탄주의에 대해 현상적, 인류학적, 법률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사목적 등 다각도로 분석하고 교회가 이를 올바르게 알고 대처할 것을 촉구했다.
사탄주의는 결코 과소평가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서도 안된다는 것이 교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곧 이를 극소수만의 왜곡된 소집단에만 국한된다는 태도나 맹목적인 공포심, 과도한 반사탄주의와 같은 증후군적인 태조를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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