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 여성장애인들의 보금자리 「엠마우스 공동체」는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박스, 책, 우유팩 등의 폐지에서부터 헌옷, 빈병, 고장난 가전제품, 각종 살림살이에 이르기까지.
서울 상수동에 자리잡고 있는 「엠마우스 공동체」는 이러한 재활용품을 모아 분리하는 일로 필요한 재원의 대부분을 충당한다. 각 본당과 가정에서 모아놓은 재활용품을 트럭에 싣고 와 분류하고 가져다 파는 것이 이곳의 일이다. 낮춰 말해 「고물상」이라 해도 되겠다.
「엠마우스 공동체」의 8명의 장애인과 함께 살고 있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 4명의 모습은 영락없는 노동자다. 시장이나 농촌 아주머니들의 전유물로만 알려진 일명 「몸빼바지」를 걸치고 더운 여름 변변한 선풍기 한 대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한다. 아침 8시반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종일 꼬박이다. 면장갑을 끼고 일하지만 손톱 사이에 먼지가 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들의 손은 성화(聖畵)에서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기도하는 모양으로 그려진 하얗고 매끄러운 손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손은 땀흘리는 이의 손이고 한낱 쓰레기로 버려질 뻔한 것들의 재활용품으로 변화시키는 생명의 손이다.
수녀들은 종이 한 장 예사로 넘기지 않는다. 종이도 종이 나름. 전산지, 복사지, 신문지, 박스가 그들 눈에는 모두 다르다. 재생종이로 넘길 때 매겨지는 값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내지와 표지를 일일이 분리한다. 아무 일도 도울 수 없던 장애인들도 이제 이 일에는 익숙해졌다. 손에 힘이 없던 그들도 훈련과 연습으로 하나씩 일을 배워가고 있다.
엠마우스 공동체가 문을 연 것은 지난 84년. 서울대교구 김몽은 신부가 터를 닦은 이 집은 「재활용」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할 때부터 자원절약과 환경보호를 목표로 쓰레기를 모아 분리수거를 실시해왔다. 『가난한 이들이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를 돕는다』는 엠마우스 운동의 창시자 아베 삐에르 신부의 설립정신에 따라 그렇게 모은 돈으로 장애인들의 생활을 꾸려왔다.
작년 한해 동안 엠마우스 공동체 가족들이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한 횟수는 686회. 매일 두 번 꼴로 본당과 가정을 돈 셈이다. 그런데 지난해 들어 신자들이 모아 주는 재활용 쓰레기의 양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윤은순 원장수녀는 그 이유를 『IMF 이후 물자절약 정신이 되살아나 버리는 양 자체가 줄어든데다 본당마다 재활용장터가 생기면서 지역 자체 내에서 분리수거가 해결되고 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그러한 현상은 바람직하고 기쁜 것이기는 하지만 『소중한 자원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어 주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라고 윤수녀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엠마우스 공동체에는 사실 그것 말고도 걱정거리가 또 하나 있다. 강변 옆에 있는 이곳이 도로개발 토지로 확정되면서 내년 봄이면 이 집을 떠나야 하는 것. 아직까지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했고 보상금이 어느정도나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후원자들의 도움외에도 쓰레기를 모으는 일로 자급자족해 오던 그들이었지만 이젠 정말 다른 이의 따뜻한 마음과 손길이 필요한 때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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