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유다교 유산
9)베라카
유다인 신심 중에 전례와 연관된 특출한 의식이며 그리스도교 성찬 의식에 크게 영향을 미친 베라카(berakah)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유다인들은 대개 성전의 희생제사에 집착해 있었다. 그러나 유다교 신심은 의식을 통해 영적 영양분을 얻고 전례를 통해 심심을 표현하려고 하였다.
특히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는 희생제와 함께 시편을 노래하였다. 현대 사가들은 예언과 토라는 그 근원을 전례 거행이 있을때마다 사제들이 권위있게 가르친 말씀에 두었다고 본다. 유다인들은 바빌론 유배 이래 그들의 신심을 회당에서 행해진 예배로 방향을 돌렸다. 이는 간단히 말해서 성서 봉독에 의해 영적인 양식을 얻는 기도와 묵상적으로 성서 봉독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뜻이다.
즉 의식이 성서 봉독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되어 기도로 표현되었고 말씀이 공포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축복과 감사제인 베라카가 나왔다. 그들은 특별한 은혜를 받을 때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희생제를 드렸다. 그 제사에는 적절한 시편들이 첨가되어 기도를 더욱 풍부하게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희생의식의 영성화를 볼 수 있고 신심깊은 선민들의 모든 행위를 거룩하고 진정으로 의식적인 행위로 만드는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성체성사 거행을 감사제라고 한다. 베라카를 우리는 그리스도교 이전 유다 영성의 통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음식에 의식상의 축복을 내린 후 잔치의 주례자가 종교적 격식에 따라 빵을 쪼개는 것을 시작으로 잔치의 모든 행위를 거쳐 최후의 잔에 장엄한 축복을 내렸다. 이들이 나눌 친교의 음식은 하느님이 마침내 당신의 모든 백성을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당신의 왕국으로 불러모으실 메시아의 잔치를 실제로 미리 기대하는 것이었다.
밤을 밝히는 빛을 축복하고 축복된 향을 살라 바치는 의식, 주례자가 손을 씻은 후 다음과 같은 감사기도를 바치도록 모든 참여자들에게 권고하였다.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마땅하고 옳은 일이옵니다』그 다음 장엄한 기도가 이어졌다. 그 기도는 오늘까지 유다 전례에서 바쳐지고 있으며 이 기도에서 미사 감사송의 개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의식은 창조와 과월절에 의한 최초의 속량을 상기시켜 주며 하느님께 대한 감사는 이어진다. 매일 먹는 음식과 하느님에 의해 알게된 지식에 대한 감사가 뒤따르고 봉헌과 믿음에 의한 포기 그리고 닥쳐올 종말론적 미래에 이루어질 마지막 탄원의 기도가 뒤따른다. 말씀의 식탁과 성찬의 식탁으로 구성되어 있는 미사와 유사한 베라카는 유다교 신심의 자양분이 흘러 넘치는 전례였던 것이다.
10) 그리스 유다이즘
유다인들은 외세의 침략을 받기도 하였으나 생업을 위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많은 유다인들이 이집트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의 중심지는 그 당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 알렉산드리아였다. 그 도시는 지중해에서 인도와 아라비아를 잇는 그 당시 세계의 접합점이었으며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 여러 민족들이 교역하던 항구 도시였다. 다행히도 본토 헤르레아 말을 모르던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을 위하여 그리스어로 성서가 번역되자(칠십인역 성서는 기원 전 250년 경에 시작되어 200년 경에 완성됨)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유다이즘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는 성서가 그리스어로 옷을 입음으로써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유다인들 사이에 상당한 세력을 견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후에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나 기타 지역의 그리스풍 유다인들은 유다교 영성의 가장 분명한 모습에 대해 경탄할만한 믿음의 증거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 그리스, 유다교적 사고와 종교적 특성은 처음엔 유다교로, 다음으로는 그리스도교로 침투하게 되었다. 그것은 구약성서, 신플라톤사상, 스토아 사상, 신피타고라스주의의 종교철학이 혼합돼 신비적이라고 할만한 그들의 신심이 혼합되어 그리스 유다이즘이 발행하게 되었다. 특히 성서 주석에 있어서 비유적 해석이 이곳에서 발달하였다.
그들은 비록 본토를 떠나 있었으나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저버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더 돈독히 한 이들이다. 그들이 이룬 공동체에서 독특한 신앙활동을 한 인물은 철학자로 이름이 높은 필로이다. 그는 기원전 25년에 출생하여 65세를 살았다. 그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와 동시대인이었으나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완벽한 그리스어를 구사한 필로는 한 때 정치적인 인물이기도 하였으나 저술가와 철학자로 이름이 높다. 그는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신플라톤 사상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플로티노스의 신비사상은 필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며 그의 사상은 헬레니즘과 그리스도교 사이의 전환기를 잘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중의 일부가 그리스도교 교부들, 특히 오리게네스, 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와 암브로시오, 유스띠노 등과 중세기의 유대 철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필로의 사상은 구약성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에게는 성서가 인식의 왕도였다. 그는 성서를 은유적으로 해석하였으며 그 시대의 절충주의의 영향으로 특히 스토아 사상을 민족종교의 교의에 적용시켰다. 그는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의 영향을 받은 어떤 교부들은 플라톤이 그리스말을 하는 모세로부터 배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필로의 사상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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