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순교자 김정희(안드레아·건축업·당시 50세)는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교회 건축물 중에는 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많다.
명동성당만 해도 건축 50주년을 기념해 실시한 대보수공사 때 그가 총감독을 맡아 벽돌 한 장까지 꼼꼼하게 손을 봤던 곳이다. 설계에서 시공에 이르기까지 그가 맡았던 명동성당 문화관 건물은 그 견고함에 전문가들도 감탄한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있었던 그는 명동성당 보수공사를 맡기 전에도 이미 크고 작은 교회 건축 사업에 발벗고 나섰다. 당시 명동본당 정남규 회장이 사재를 털어 군자동에 양로원을 지을 때에도 도움을 주었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가 명동성당 건축 50주년을 맞아 교회 유지들을 모아 보수 공사 문제를 논의할 때이다. 공사 업체와 감독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노대주교의 물음에 한 교우가 서슴없이 김회장을 추천했다.
『이번 공사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업체는 공개 입찰을 하더라도 총감독만은 교우 중에서 선정해야 하고 가장 적임자는 김정희 안드레아 회장입니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당시 혜화동본당 회장을 맡고 있던 김정희 회장은 이 중요한 사업을 차질 없이 수행했다.
혜화동본당 회장
장면 박사의 처남인 김회장은 원래 미곡상을 하면서 취미로 건축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 본격적인 건축가처럼 됐다. 결혼 후 슬하에 자녀가 없어 딸 하나를 입양, 큰 풍파없이 살아오던 김회장 가족들에게 6.25는 참혹한 시련이었다.
토목업을 하면서 김회장과 유난히 친분이 기었던 장지배라는 교우는 그가 납치되던 당시의 일을 비교적 상세하게 전해준다.
김회장이 6.25를 맞이한 것은 혜화동본당 회장을 맡으면서 동성중학교 남쪽에 있는 포도밭을 관리하던 때였다. 그 역시 다른 많은 교우들이 그랬듯이 『내가 무슨 죄가 있어 피난을 가겠는가』하며 끝내 몸을 피하지 않았다.
밀고로 납치
그때까지만해도 북한 공산당이 혜화동본당 회장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이는 한국 교회의 중심인 명동본당 회장들의 탄압에 주력했기 때문인 듯 하다.
김회장이 끌려간 것은 동네 사람의 밀고로 인한 것이다.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기 직전 한 청년이 「동숭동 인민위원회」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동회문을 열고 들어섰다.
「위원장 동무」를 찾은 그는 「거물급 반동분자」에 대해 밀고했다. 그는 『김정희라는 자가 교회 포도밭을 관리하고 있다』며 『그가 지금 이승만 정부의 미국대사로 가 있는 장면의 처남』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로부터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위원장과 내무서원은 밀고한 청년을 앞세우고 김회장의 집으로 몰려갔다. 내무서원은 두 말 없이 거친 발걸음으로 집안을 뒤졌다.
“큰 반동이구만”
집에서 많은 성물(聖物)들이 나왔다. 전쟁을 피해 몸을 피하던 성직자들은 김회장에게 성물을 맡기곤 했었다. 성물들을 발견한 위원장과 내무서원은 『큰 반동이구만』이라며 그의 팔을 낚아채 끌고 갔다.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한 김정희 회장은 조용히 성호를 그으며 뒤를 따라 나섰다.
다른 명동본당 회장들과 마찬가지로 그후 그의 행방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불행하게도 부인 김수산나씨는 그로부터 5년 뒤 피난살이를 하다가 세상을 떠났고 양녀 또한 오래지 않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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