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는 우선 그 수효와 역할로 보아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회의 구성원이다.
교회는 평신도로부터 세상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평신도를 교육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평신도는 성경, 교회의 전승, 교부들의 가르침을 받아 자신을 성화하면서 세상을 그리스도화하고 복음화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평신도의 가정 생활, 사회 활동, 신심 활동, 특별한 사도직 활동 등은 모두 하느님께 바치는 영적 제물이다. 평신도들은 거룩하게 하느님을 섬기면서 이 세상과 자신을 하느님께 산 제물로 봉헌하는 자들이다.
평신도는 더 이상 기도하고, 헌금하고, 복종만 하는 신분이 아니라, 교회와 세상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사명을 자신의 고유한 사명으로 알고 수행하도록 부름 받은 소중한 직분을 갖고 있다. 평신도들은 자신의 신원에 대한 자각과 부여된 사명 및 역할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제도주의적인 교회관의 상징인 성직주의를 극복하고, 서로 대화·협력·연대를 통해 친교적 교회를 건설하고 성사로서의 교회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사목자들은 필요에 따라 교회법이 정한대로, 성품에서 나오지 않는 직무와 역할을 평신도들에게 맡겨야 한다. 평신도가 성직자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교회 법규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그릇된 세상의 풍조를 따르다 보면 세속주의, 반성직주의, 반교계주의 평신도주의에 떨어질 수 있으므로 이에 유의해야 한다.
둘째로 평신도들에게 분명한 윤리적 기준을 식별하는 시각이 반드시 요청된다. 현대사회에서 신앙인들이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소유해야만 한 시대의 양심과 윤리를 바로 세울 수 있다. 오늘날 자유를 절대적인 것으로 격상시켜 모든 가치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는 사조가 있다. 이는 하느님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거나 무신론적인 이론과 실천으로 가는 아주 잘못된 방향이다. 하느님을 전제하지 않는 윤리 규범은 순전히 인간적 윤리일 뿐이다.
셋째로 세상에서 평신도들이 수호해야 하는 과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그 권리일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에는 현대 사회의 생명 경시 풍조에 대한 경고와 함께 올바른 생명 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기준과 규범을 전해준다.
무고한 생명을 강탈하려고 하는 고의적인 결정은 언제나 도덕적인 악이다. 그 어떠한 것도, 어느 누구도 결코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허용할 수 없다.
오늘날 국가의 법령을 통해 낙태가 허용되고 있다는 것은 도덕적인 판단력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음을 의미한다. 난자가 수정되는 그 순간부터 아버지의 생명도 아니고 어머니의 생명도 아닌 한 생명이 시작된다. 그 생명은 스스로 성장하는 새로운 인간 존재의 생명이다.
안락사는 매우 반인륜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이다. 안락사는 과도한 의학적 치료를 중단하는 것과는 다르다. 특별한 치료 혹은 부적절한 수단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결코 자살이나 안락사가 아니다.
자살 역시 살인과 함께 윤리적으로 부당하다. 자살에는 자기사랑 거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전체 사회를 향한 정의와 자비 의무에 대한 포기가 동반된다. 자살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하느님 주권에 대한 거부를 드러낸다.
국법의 권리들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모든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이 지닌 불가침권이다. 낙태와 안락사는 인간의 어떠한 법으로도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는 범죄들이다.
하느님의 계명은 인간에게 생명의 길이다. 어떤 행위의 선택이 윤리적으로 불가하다고 선포하는 금령(禁令)들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이런 규정들은 언제 어디서든 예외 없이 효력을 갖는다.
넷째로 한국 천주교회는 사제 없이 평신도 학자들의 진리 탐구 모임을 통해 자발적으로 천주교 신앙을 발견하고 실천한 세계역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과정을 통해 태어났다. 100여 년의 긴 박해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선조 평신도들은 목숨을 바치면서 천주교 신앙을 지켜냈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한국의 평신도들은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희생을 감수하였다.
그러나 냉담 교우들의 증가, 선교의 둔화, 소극적인 성사생활과 교회활동, 개인주의적 신앙생활 등은 개선해야 할 점이다. 신앙생활로 내실을 다지고 자신감을 갖고 있어야 사회에서도 솔선수범하는 태도로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들이 자의식을 갖고 열심히 기도하며, 성경을 연구하고, 교회와 사회발전을 위해, 인류 복음화를 위한 다양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는 일이 급선무다.
결론적으로 평신도는 세상과 사람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복음전파라는 중책을 수행하고 있다. 평신도는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물들이기 위해 성령과 신앙의 빛으로 조명받은 윤리적 규범과 기준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실천에 옮겨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긴박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는 인간 생명 경시 풍조인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고, 인류 구원을 위한 생명 문화를 건설하는 일이다.
평신도들은 하느님과 교회의 정신에 따라 세상의 악습을 제거하면서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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