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인의 자손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성 손선지 베드로입니다. 그분은 1820년에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 괴인돌(현 지석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분은 17세 때, 샤스탕 신부에 의해 전라도 전교회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순교할 때까지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1886년 추수 때, 그분은 천주교인에 대한 수색이 심해졌다는 소문을 듣고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곡식을 키로 까불어서 검불과 분리시키는 것처럼 천주께서도 박해 때에 그렇게 하시는데, 나 같은 사람을 천주께서 당신 곳간에 받아 주실까?”
1866년 12월 5일, 전주지방의 교우촌이었던 대성동 신리골에 포졸들이 습격했고, 그분은 체포되었습니다. 그분은 사형집행 전날 함께 갇혀있던 김사집 필립보에게 입던 웃옷을 벗어 주며 말했습니다. “나는 내일이면 죽으러 가네. 죽을 사람에게 이 옷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옥에 남아 있을 자네 옷이 시원찮아 추울 테니 자네가 입게.”
그분은 1866년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습니다. 그분은 죽으면서도 예수 마리아를 끊임없이 외쳤고, 희광이의 칼이 두 번 빗나가자 칼을 가지고서 장난하지 말라며 꾸짖으며, 세 번째 칼에 목이 끊어져 순교했습니다.
그분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처형장에서 얼마 안 떨어진 부엉바위 아래에 가매장되었고, 이듬해 3월 6일 천호성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분은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분의 자손임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겸손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제가 그분의 삶을 본받지 않아서입니다. 그분은 목숨보다 신앙이 소중함을 증명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분은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 목숨을 구한 분입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을 위해 아무것도 바치고 있지 않기에 그분을 자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제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입니다. 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물었습니다. “나 죽으면 어디 가.” 사제인 제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아십니까? 하늘나라에 간다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할아버지 계신 곳에 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부연설명을 하시더군요. “당신의 아버님은 신앙적으로 훌륭한 분이셨고, 당신 아버님의 할아버지께서는 성인이시니까 천국에 계시고, 당신도 착하게 사신 분이니까 하늘나라에 가실 거예요.”
만일 제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확신했다면 그렇게 대답했을까요?
만일 제가 신앙이 생명보다 귀하다고 믿는다면 성인의 후손임을 자랑하지 않을까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루카 9,26)라는 그분의 말씀이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성인의 자손임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제가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저는 누구입니까? 성인의 자손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103위 순교성인들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것을 자랑하지 못합니까?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로마서 8,35.37)
성인들은 확신했습니다. 삶도, 죽음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그들을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도 확신합시다.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들을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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