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사에서 유학하던 시절, 로마에서 유학하시던 라자로라는 신부님이 계셨다. 그때만 해도 나는 신자가 아니어서 라자로라는 이름을 몰랐었다. 신부님은 당신이 보시던 성경을 주셨는데 거기에 라자로 신부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후 그분은 유학생이었던 우리 부부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 주셨는데 그분이 바로 현재 대전교구의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이시다.
라자로에게는 마리아와 마르타라는 두 누이가 있었는데 자신의 긴 머리카락에 향유를 묻혀 예수님의 발을 닦아준 본 특집에서도 다룬 그 유명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바로 라자로의 누이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베다니아라는 마을에서 살았으며 성 라자로가 베다니아의 주교로 알려져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에서만 기록되어 있고, 역사적 사실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며 다만 구전(口傳)으로 전해질 따름이다.
라자로가 위독하게 되자 마리아와 마르타는 사람을 보내 예수님께 오빠의 병세를 알렸다.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당장 달려가는 대신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장차 일어날 일을 예수님은 벌써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베다니아에 도착했을 때 라자로는 무덤에 묻힌 지 사흘이나 된 상태였다. 두 자매는 주님께서 계셨더라면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슬피 울었다. 예수님이 라자로가 매장되어 있는 입구를 돌로 막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셨을 때 라자로는 이미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체가 되어버린 라자로를 살려내는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거기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이 하느님이 보내셨음을 믿게 하였다.
“라자로야 이리 나오너라!”
이 말씀 한마디에 시체가 관에서 일어나 무덤 밖으로 걸어 나왔다. 몸은 전신이 수의로 꼭꼭 감겨있는 상태였다.
바로크 양식의 거장 렘브란트는 1632년 동판화로 ‘라자로의 부활’을 그렸다. 렘브란트는 그림 외에도 다수의 동판화를 제작했는데 이 작품은 그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큰 것으로 이 대가의 대표작에 속한다. 동판화에는 동판 위를 직접 끌로 새기는 기법과 부식 시키는 기법이 있는데 이 작품은 아콰포르테라는 부식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동판 위에 왁스를 덮은 후 그 위를 끌로 긁어 그린 후 산에 넣어 부식시키면 끌로 그린 부분이 마치 펜으로 스케치한 것처럼 검은 선으로 나타나는 기법이다.
예수님이 왼손을 번쩍 들어올려 라자로에게 부활을 명하자 무덤에서 비스듬히 일어나고 있는 순간이다. 예수님은 정면이 아니라 옆모습으로 그려졌기에 표정은 보는 이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무덤 주위에는 두 주인공 이외에도 기적을 지켜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흥미진진하고 연극적인 요소로 이야기를 꾸려나간 것인데 사실 성경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무덤에 모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니 결코 과장이 아니요, 성경에 충실한 묘사라 해야 할 것이다. 렘브란트는 빛의 대가답게 예수님 몸의 절반을 중심으로 기적의 뒤쪽에는 어둠을, 그 앞쪽 특히 주인공 라자로에게는 환한 빛의 하이라이트를 선사함으로써 이야기의 극적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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