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 내 목숨을 바치고 도끼날에 목을 잘리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옥중에서 죽는 것을 천주께서 원하시니 천주의 성의가 이루어지이다.”(1839년 9월 12일 최경환 성인)
꼭 171년이 지난 오늘. 성인이 우리에게 돌아왔다.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교우들을 돌보며 아들을 한국교회 두 번째 신부로 키워내고, 옥중에서 순교하는 순간까지도 주님께 온전히 자신을 바친 성인.
12일 안양아트센터 관악홀은 세상의 빛이 되어 다시 돌아온 ‘세인트 최경환’을 현양하는 열기로 가득 찼다. 작품 구상부터 무대에 오르기까지 무려 4년. 길고 긴 준비시간만큼이나 총 4막으로 구성된 오페라 ‘세인트 최경환’은 성인의 거룩한 삶을 느끼고 체험하고 받아들이며 배우는 시간으로 충분했다. 교구장 이용훈 주교를 비롯해 관악홀을 가득 메운 1200여 명의 관객들은 아주 오랜 역사속의 인물, 순교자이자 성인으로만 희미하게 가슴속에 머물러 있었던 최경환 성인을 만났다.
‘배교하라’는 혹독한 고문과 회유에도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최경환 성인의 삶, 굶주림 끝에 막내아들을 품속에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성례 마리아의 애달픈 모성애, 자식을 살리기 위해 배교했다가 자진해서 감옥으로 돌아와 참수될 날을 기다리는 이성례 마리아의 삶이 무대에서 그려졌다. 조선시대 지도층의 부정부패, 천주교 탄압의 배경, 흥겨운 장터 장면, 수리산 담배촌에서의 어렵지만 밝게 살아가던 교우들의 생활상도 무대에 올랐다.
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안양대리구에서 이렇게 훌륭한 오페라를 만날 수 있어 감사하다. (오페라가) 험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될 것 같다“며 ”앞으로도 이 오페라가 전국 방방곡곡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도 공연돼 한국교회 순교자들의 삶과 정신을 퍼뜨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오페라의 제작과 지휘를 맡은 박영린(십자가의 성요한) (사)코리아콘서트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은 “성인께서 순교하신 날인 오늘 첫 공연을 하게 되어 더욱 뜻 깊다. 작품을 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세상엔 혼자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라며 “어려운 시간 내어 작곡을 맡아준 리카르도 죠바니니(로마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와 연출, 출연 스태프 그리고 무대에 작품이 오르기까지 힘 보태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다”고 전했다.
이날 첫 공연을 본 신자들도 순교자 성월을 뜻 깊게 보낸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안양대리구 평협회장 이강웅(스테파노)씨는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좋은 시간을 가진 것 같아 기쁘다”며 “안양수리산 담배골에 최경환 성인이 사셨던 것을 생각하니 안양토박이로서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수리산성지에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전했다. 이 크리스티나(수리동본당)씨는 “순간순간 감동에 북받쳐 눈물이 났다. 선조들의 신앙이 그렇게 큰 줄 몰랐다”며 “선조들의 순교정신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그대로 체험한 것 같다. 하느님을 위해서 매순간 순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 미니 인터뷰 】 최경환역 맡은 바리톤 송기창
▶ 최경환역을 맡게 된 계기는
- 박영린 음악감독님과 연출가 김홍승 선생님께서 신자이면서 이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성악가가 누구일까 생각하시고 연락을 주셔서 이 오페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 지금까지 해 온 오페라 공연 중 가장 길게 연습하고 준비했던 오페라였던 것 같습니다. 인물분석부터 시대적인 상황 묘사 등 모든 걸 새롭게 고증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창작 오페라였기에 힘든 점들이 많았습니다.
▶ 역할을 준비하며 신앙생활에도 변화가?
- 신자로서 공연을 준비하며 ‘최경환 성인과 그외에 선배 순교자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인내를 겪으셨을까’ 하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고마운 기회였습니다. 성인처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 첫 공연 소감은?
- 보통 다른 공연이나 오페라의 경우 그 역할을 즐기면서 하는 편인데 오늘은 공연 중간 중간에 제 노래를 하면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울컥 눈물이 나올 뻔한 장면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더 나은 공연으로 관객들, 신자분들께서 많은 감동과 주님의 사랑을 느끼시고 전파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당부하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 오페라는 종합예술입니다. 많은 인원이 동원되기 때문에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천주교 성인을 주제로 하는 오페라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가 따르지 않으면 이러한 좋은 작품들이 쉽게 사장될 수 있습니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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