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과 스치게 되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서일까,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된다. 『또 무슨 옷타령이야. 집에 있는 옷 다 어쩌고!』
엄마의 말에 아이는 웅얼웅얼 뭐라고 대꾸는 하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엄마의 지당한 말씀에 어디라고 부러지게 대답할 수 있을까. 쑤욱 나온 입이랑 툭툭 소리내며 걸어가는 태도로 마뜩찮음을 나타낼밖에.
저 엄마의 확고한 의지에 변함이 없을까, 아니면 뒤쳐져서 걸어가는 딸아이의 요구에 변함이 없을까. 내기를 하자면 아이의 우세가 활실할 것이다.
국산 SF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앞의 긴 줄이며, 주 고객이 아이들인 식당은 새로운 메뉴로 그들의 입맛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엄마는 또래 아이들 유행을 익히기 위해서 백화점에도 가끔을 들러야 한다.
보충학습 때문에 유명학원을 기웃거리며 외상도 할인요금도 없는 학원비를 바쳐야 한다.
『요즘 어른들은 아이들의 종이야』
『365일 어린이날 아닌 날이 어디 있다고 따로 어린이날이람』
부모들의 고생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자녀의 학원비를 마련키 위해서 파출부로 나설 수 밖에 없었던 어느 엄마의 얘기는 지어낸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고된 부모에 비해 자식들은 충족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베푸는 크기만큼 끊임없는 압박을 받아야 한다.
숙제가 없다고 놀기만 하느냐. 니가 논다고 다른 애들도 다 놀고 있는 줄 아느냐. 왜 텔레비전 앞에만 앉아 있느냐. 그렇게 먹다간 비만아가 된다는 등등.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는 엄마의 간섭에 시달린다.
캠프의 마지막 날 저녁, 소감을 적어 내면서 몇몇 여학생들은 울었다. 이렇게 자유롭고 재미있는 시간이 끝이라니 너무나 아쉽다. 이제 집에 돌아가면 지긋지긋한 엄마의 잔소리를 또 들어야 한다는 것이 울음의 이유였다. 엄마의 잔소리는 엄마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아이로 조종하고 싶어하는 엄마의 욕심이라고 아이는 생각한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너를 사랑하니까 야단도 치고 매를 때리는 거야』
이런 지배가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믿음을 줄 수 있을까 자신없는 부모들.
「엄마, 이거 먹어도 되요?」하고 허락을 받고, 방문을 열어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시키고, 친구집에 놀다가 몇번씩 집으로 보고 전화를 하게 만드는 엄마.
아이가 별 잘못 없이도 엄마를 보면 무르춤해질 때, 과연 나는 엄마노릇을 잘 하고 있는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열심히 먹이고 입히고 뒷바라지 하고 니들 때문에 산다고 여기다가 어느 날, 『아이구 니들 탓이야!』하고 찜부럭낼 때는 없었는가 돌아봐야 한다.
신창원에게 거액을 빼앗긴 강남의 부자가 아이들이 보복 당할까 두려워서 신고 못했노라는 변명을 듣고 자식을 앞세운 부정(父情)에 뒷 말을 삼켜야 하는 가난한 부모들.
아파트 베란다에서 차에 시동을 거는 아버지를 향해 아이는 손을 흔든다.
아버지도 아이를 올려보며 손을 흔들어 준다.
싱그러운 아침 햇귀가 아파트 마당에 가득하다.
청소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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