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바에 베이스 캠프를 친지 벌써 3일이 지났다.
한국 교민들의 정성어린 도움과 터키인들의 따뜻한 친절 때문에 큰 어려움과 낯설음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날짜 가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지만 주위에 심어져 있는 소나무, 유도화, 포플라, 플라타너스, 미루나무, 능수화 등이 한국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이보다는 더 터키인들의 심성과 우랄알타이어 계통의 언어, 역사적 근원이 한 뿌리라는 생각, 더불어 6.25 참전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과 한 형제라는 생각이 우리를 참 편안하게 하였다. 마치 이곳이 한국이라는 착각을 더욱 일으키게 한다. 나는 아직도 터키에 온 것 같지가 않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다.
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지만 오늘도 그들의 안타까움에 완벽한 도움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고 손짓 발짓으로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뜻이 서로 교감되고 있다. 아마 하느님께서 개입하셨다고 본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환자들의 아픔은 대부분 지진으로 인한 것이나 기존에 가지고 있는 질환들도 적지 않았다. 갈수록 많아지는 환자들을 대하면서 우리의 표현력 또한 갈수록 늘어나 그들과 한 형제임을 점점 깊이 느끼게 만든다.
자원봉사자(통역원)들이 늘어나 한국 의료진이 미국 캠프에 가서도 진료를 하고 있어서인지 터키인들 사이에 「꼬레」의료봉사단이 소문났다. 어느날은 앙카라에서 왔다면서 진료시간이 지났는데도 꼭 진료를 해달라고 조르는 모습은 한국의 한 풍경과 흡사했다.
가장 피해가 큰 필튀크에는 아직도 건물잔해 제거로 인해 먼지가 자욱하여 마치 연막탄을 뿌려놓은 듯하지만 질서 정연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대처하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한 도시가 『사라졌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끔찍하고 지나가기 조차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의료 봉사를 왔다는 말이 너무나 부끄럽다. 무엇을, 얼마나 가진 것을 주겠다는 봉사란 말인가. 물론 한국의 수해상황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터키와 한국의 천재지변이 미치는 영향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사전에 예방될 수 있는 재난과 불가항력의 재난은 사람의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는 양상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끝까지 터키인들의 마음을 여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기쁘게 『한국은 우리 형제』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터키가 우리 형제라는 것을 기쁘게 말하고 싶다. 한국에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이 안 든다. 터키에 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에…
99.8.28
(스테파니아·가톨릭대학교 성 빈센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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