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도시 곳곳에서는 전투가 한창이다. 보스니아도 아니고 동티모르도 아니다. 종교 분쟁이 한창인 인도네시아도 아니고 부족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도 아니다. 그렇다고 「조폭」(조직폭력배)들간의 구역 분쟁도 아니다.
최근 들어 도심 구석구석 안들어선 곳이 없는 일명 「PC방」에서는 기이하게 생긴 세 종족간의 싸움이 한창이다. 17인치 컴퓨터 화면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자잘한 동네 싸움이 아니다. 적어도 「광할한 우주」를 무대로 한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도심 곳곳, 오늘도 전투가
미국 블리자드사가 만든 게임 소프트웨어. 「스타크래프트」는 지난해 4월 출시된 후 전세계에서 모두 300만 카피가 팔렸다. 가히 금세기 최대의 게임이라 할만하다. 그중에서 우리나라에서 팔려나간 것이 70만장, 이를 즐기는 인구는 200만으로 추산된다.
폭발적인 스타크 마니아들의 증가는 전자오락을 청소년들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이전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깼다. 중고생 등 청소년과 기껏해야 대학생 층이던 주사용자층이 언제부턴가 넥타이 부대로 번졌다. 높은 인기는 프로 게이머들을 탄생시켰다. 세계적인 대회에서 한국의 전투원들은 세계 10위 안에 7명까지 랭크되는 기록을 남겼고 아이들의 장해 희망이 신주영이나 이기석 같은 빼어난 게이머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전자오락은 남는 시간을 때우는 한가지 유흥에 그치지 않고 삶의 여러 요소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그 중에서 스타크래프트(Star Craft), 그 확장팩은 브루드워(Brood War)는 고스톱이나 포커까지 몰아내고 신세대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연배에 오른 직장인들까지도 사로잡은 하나의 지배적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스타크래프트란
「스타크래프트」는 미국의 한 게임 제작회사가 만든 컴퓨터 게임 소프트웨어이다. 등장인물은 개성이 뚜렷한 세 종족이다. 테란, 저그, 프로토스라는 이름의 세 종족 중 하나를 선택해 자원을 생산하고 종족의 수를 불려 상대 종족을 말살함으로써 승리를 꾀한다.
인간은 그중 한 종족인 테란. 기계를 잘 다룬다. 저그는 파충류와 곤충을 섞은 듯한 형상을 한 영화 속 에이리언을 닮은 종족으로 강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가장 고차원의 종족인 프로토스는 고도의 정신력을 발휘하는 종족이다.
각 종족은 나름대로 장점과 단점을 고추 갖추고 절묘한 힘의 밸런스를 이뤄 승부는 어느 종족을 택하든지 게이머의 전략 전술, 빠른 핑거링(fingering)에 달려 있다. 100원 짜리 동전을 수없이 집어넣으면 어쨌든 끝까지 갈 수 있는 이전의 전자오락처럼 생각하고 무턱대고 덤비는 초보 게이머는 여지없이 「박살」나고 만다. 그러면 무엇이 그저 하나의 오락 게임에 지나지 않는 스타크에 사람들을 그처럼 열광케하는가.
의사 소통으로서의 전투(?)
스타크에서 게이머는 PC와 대결을 벌일 수도 있고 온라인으로 미지의 상대와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여기서 스타크의 가장 큰 매력을 찾을 수 있다.
고정되고 다음의 수순을 읽을 수 있는 PC와의 게임에 물린 초보 게이머는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를 무대로 결투를 신청한다. 스타크래프트 전용 베틀넷(battle-net)에서는 8명까지 동시에 게임이 가능하다. 4-4로 편을 갈라 싸울 수도 있고 8명이 제각각 싸울 수도 있다.
따라서 전략과 전술이 무궁무진하며 어제의 전략이 오늘은 먹히지 않는다. 전투의 상대가 게임마다 바뀔 수 있고 그에 따라서 상대의 응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 번 게임에서 초반 러시가 효과가 있었다 해도 이번 게임에서는 수비를 튼튼히 해야 한다. 전략과 전술, 게임의 향방이 달라지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는 점 외에도 이러한 사이버 공간 안에서의 전투가 상호 의사 소통의 수단이 도리 수도 있다는 점이 어쩌면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의 근본 원인일 수도 있다.
전자오락에 빠진 청소년들을 우려하는 어른들의 주장은 많은 경우 이들의 현실 속의 인간 관계를 배우기보다는 기계와의 대면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냄으로써 인격 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종종 지적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현상을 보면 이같은 지적은 유효하지 못한 듯하다. 왜냐하면 인터넷과 컴퓨터라는 매체를 통해 어떤 식이든 인간 대 인간의 의사 소통이 이뤄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싸우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와는 협력 관계를 이뤄 공동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힘을 모으기 때문이다. 물론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맵핵(보아서는 안되는 상대 진영의 안개를 걷고 상대 전략을 읽는 행위), 디스커넥트(게임이 불리해지면 접속을 끊어버리는 반칙) 등 반칙 행위를 일삼기도 하지만 상습적으로 이런 반칙을 행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징계를 가하기도 한다.
폭력·약육강식의 세계관
스타크래프트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놀이」이다. PC방은 그저 요즘 아이들의 놀이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광범위한 대중성에 비추어 그것이 가질 위험성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는 있다.
지난해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면서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는 폭력적 장면을 이유로 「연소자 불가」판정을 내렸다. 이어 6월에는 공진협의 후신인 영상물긍급위원회가 부르드워에 대해 「전체 이용 가(可)」 판정을 내려 청소년들이 제한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미 각종 전자오락과 게임 등이 스타크에 비해 전혀 「손색없는」폭력성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굳이 엄청난 마니아들을 갖고 있는 게임에 대해 규제를 가해 봐야 효력도 없는 조치라는 판단이다.
『게임은 사이버 세대의 의사 소통 방법』이라는 셰리 터클 교수(미 MIT·과학사회학)의 지적처럼 게이머들은 게임 속의 캐릭터와 전투 방식을 선택하는 것으로 자신의 기호와 취향을 게임에 이입한다. 여기에서 역으로 게임에의 몰두가 게이머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당연히 있을 법하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승리의 관건은 적을 몰살하는 것이다. 골대에 골을 넣으면 이기는 축구나 공을 치고 다이아몬드를 완전히 돌면 승리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적을 완전히 섬멸해야 승리를 얻는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또 자원과 가스를 채취해서 생물을 창조한다. 그리고 이렇게 창조된 생물들은 적과의 전투에 소모된다. 게이머들은 게임 속에서 창조를 경험하지만 자신의 창조물들을 싸움판으로 내보내 희생시킴으로써 승리를 얻어야 한다.
「다마고치」로 잘 알려진 사이버 생물 기르기가 시들해진 뒤 일부 청소년들이 자신이 기르던 다마고치를 그냥 내버려두고 누구 것이 먼저 죽는지를 경쟁했다는 이야기는 비록 현실 생명체는 아닐지라도 듣는 이를 섬뜩하게 만든다. 옥상에서 병아리를 떨어뜨리는 초등학생 이야기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스타크래프트가 어른들이 빠지는 단지 하나의 놀이라고 할 때 문제는 없을지 몰라도 오직 폭력과 경쟁, 적을 섬멸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세계관 속에 몰입되는 결과를 자아낼 수도 있다는 점도 지적돼야 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우주 세계
스타크래프트가 갖고 있는 세계관은 신화, 전설과 비슷하다. 이야기는 「젤-나가」라는 고대 종족에서 시작된다. 신비롭고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 종족은 아이우 행성에서 발견한 프로토스 종족을 돌봐주고 그들로부터 창조의 신으로 간주되고 프로토스 종족은 눈부시게 발전한다.
하지만 프로토스 종족은 자신들이 신으로 여겼던 젤 나가를 공격하고 젤 나가는 프로토스를 떠나간다. 이들은 제러스라는 행성에서 저그라는 생물을 찾고 이들에게 프로토스의 유전자를 삽입해 발전시킨다. 저그족을 통치하는 오버마인드는 젤 나가를 파멸시키고 이를 숙주로 엄청난 지적 성장을 한다.
한편 지구에서는 21세기 과학의 폭발적 발전으로 인간의 능력과 욕심이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인류의 선택적 보존을 위한 정화운동이 시작된다. 급기야 4만명의 지구 죄수가 실험대상으로 쓰이기 위해 우주를 떠돈다.
이로써 지구인, 저그, 프로토스 등 세 종족은 우주에서 만나고 이들은 서로 생존을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이러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게임은 필연적으로 각 종족이 다른 두 종족을 물리치고 생존을 해야 하는 치열한 전쟁으로 귀결된다.
이 이야기에는 우주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부터 생물체의 진화, 미래에 이르기까지 한편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조합돼 있다.
곧 불멸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과학기술이 응용돼 장기가 기계화되고 뇌에 사이버네틱을 이식하고 유전자 조작을 통해 더욱 새롭고 강한 종족으로 다시 살아나기를 꿈꾼다. 이로써 인류의 꿈은 실현되는 듯했지만 결국 순수한 인간 종족의 보전이라는 명분하에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된다.
이런 전투놀이에 몰두해가는 현대인들에게 우리 교회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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