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종 수녀회 창설자인 페르디난도 마리아 바틸리에리 신부가 오는 10월 3일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다.
『내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자 되어라』하신 주님의 초대를 받아들인 바칠리에리 신부는 한마디로 「평범한 삶을 비범하게」살다간 사제.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일상의 삶을 매우 충실하게 살다간 한 사제를 복자품에 올리는 것은 작은 일에 충실한 자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축복의 가시적인 확인이 아닐까? 바칠리에리 신부의 시복식을 앞두고 그의 생애와 영성을 알아본다.
생애
1821년 5월 14일, 이태리의 레노 피날레세본당의 캄포도소 마을에서 태어난 바틸리에리 신부는 경건하면서도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가정, 따뜻함과 존경, 존중의 마음이 가득찬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1938년 17세 되던 해 예수회 수련원에 입회, 선교사의 꿈을 키웠으나 이듬해 건강으로 본의 아니게 퇴회해야 했던 그는 모데나 교구 피날레 에밀리아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1844년 3월 2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1851년 갈레아짜의 성마리아본당을 잠시 맡게 되면서 바칠리에리 신부는 제2의 인생기를 시작하게 된다. 사목적 열정으로 많은 단체를 조직했던 그는 고통의 동정마리아께 자신을 봉헌한 「마리아의 제 삼회」를 조직했으며 이 단체가 점차적으로 변화되어 오늘날의 「마리아의 종 수녀회」의 모체가 됐다.
사목활동
주님의 성령으로 충만했던 페르디난도 마리아 바칠리에리 신부는 자신의 성화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영적진보를 위한 열정으로 불탔다. 갈레아짜라는 작은 지방은 전 생애를 불태우는 무대가 됐으며 여기서 자신이 품고 있던 신앙의 참 모습, 교회의 참모습을 심어갔다.
41년 동안 그는 동아시아와 인도에서 선교사가 되고자 했던 원대한 꿈도 포기한 채 또 주교로서 임명 추천까지 뿌리치며 온 일생을 시골본당의 목자로 존재하길 원했던 것이다. 하느님께의 전적인 순명과 하느님 백성에 대한 자애로운 사랑의 발로였기 때문이다.
태만한 정도를 넘어 물의를 일으킨 선임자에 의해 교회로부터 신자들을 떼어놓은 본당에서 그는 관대한 마음과 헌신으로 먼저 신자교육에 역점을 두었다. 특히 강론과 교리교육을 통한 신앙교육에 주의를 기울였다. 사목활동 중 그는 5년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주관하던 「대중선교행사」를 펼쳤다. 이는 그리스도적인 삶을 주기적으로 활력있게 쇄신하기 위해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포도원에 풍성한 열매를 보증해 주는 서곡이었고, 주님께서는 그의 성실함에 대해 본당 신자들의 호응과 충실함으로 보상해 주었다. 아울러 그는 신자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직무야말로 보다 효과적이고 보다 지속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몇 시간이고(12시간정도) 고해소에서 지냈고 신자들은 그가 이끌어주는 말에 담긴 지혜와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충고에 이끌려 점점 더 고해소로 달려갔다.
그가 선종한 후 볼로냐 대교구장이 갈레아짜의 「아르스 성자」라고 할 정도로 고해성사로 인한 명성이 매우 높았다. 많은 창립자가 그렇듯 아칠리에리 신부도 수녀회를 창설한다는 거창한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자기 본당의 열악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이들에 대한 겸손하고 소박한 봉사를 할 수녀공동체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1862년 수녀회를 설립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갈레아짜 설립 마리아의 종 수녀회이다.
영성과 성덕
페르디난도 마리아 바칠리에리 신부의 독특한 영성의 향기는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성부의 뜻에 전적으로 오룻하게 순응함으로써 그리스도와 동화되는 것이었다.
그의 강인한 내적 힘은 주님과의 친교로부터 오는 영성이었다.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고 영적 자녀들에게 가르친 것처럼 그분 자신의 삶은 위대한 업적이나 활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을 하되 평범하지 않게」살면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응답하는 것이었다.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자신의 삶을 주님 안에서 완성하고 다시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이 아닐 수 없다. 위대한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생애의 모든 순간에 주님을 찾고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였던 아칠리에리 신부의 일상에의 충실은 수도자는 물론 특히 오늘의 사제들과 본당신부들에게 좋은 표본이요,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선교사의 열망을 스스로 채우지 못했지만 마리아의 종인 그의 영적인 딸들이 창립자의 염원을 이어받아 한국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의 증인이 되고자 봉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페르디난도 마리아 아칠리에리 신부가 설립한 갈레아짜의 마리아의 종 수녀회는 국제 수녀회로서 1985년 한국(한국지부장=마리아 가르멜다 조르다노 수녀)에 진출, 창립 카리스마에 맞추어 청주, 인천, 수원교구의 4개 본당에서 20여명의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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