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라 한가위」.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한해 농사를 끝내고 수확이 기쁨을 맛보는, 가장 풍성한 때이다. 그동안 못 뵌 집안 어른들과 안부를 나누고 어느새 훌쩍 커버린 조카들과도 밀린 이야기 꽃을 피운다.
하지만 지난번 수마(水魔)로 모든 것을 빼앗긴 수재민들에게는 이번 한가위가 어느해 보다 쓸쓸하다. 흉가가 돼버린 자신들의 집을 보면 가슴이 메이고, 당장 먹고 살 걱정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수해 후유증. 모든 국민들이 추석명절의 설레임에 들떠 있지만, 수재민들은 눈물과 탄식 속에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지난번 수해의 최대 피해지였던 경기도 파주시 문산지역. 올해로 45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김성숙(루이제·73)씨에겐 산다는 게 고통과 절망이다.
10년전 외동딸을 시집 보내고 남편 박은수(요셉·80)씨와 외롭게 살고 있는 김성숙씨. 그는 지난 96년에 이어 또다시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간 수마가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여기에다 남편 박씨의 중풍으로 대소변도 다 받아내야할 상황. 당장 먹고 살 걱정에 남편까지 이러니 김씨의 눈가엔 주름만 부쩍 늘어간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져 눈물만 나옵니다. 우리 두 부부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이런 지경까지 왔는지…』
말을 채 잇지 못하는 김성숙씨의 눈엔 어느새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진다.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두 노부부 살기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96년 수해 때는 지금보다 피해도 훨씬 덜했고, 어렵게 살지만 외동딸이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 하지만 이번 수해로 집이 붕괴되고 살림 도구하나 건진게 없어 완전 무일푼이 됐다. 딸도 굉장히 힘들게 살고 있어 김씨는 도움 청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수해 후 물이 빠지고 다시 집을 찾았을때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럴때 우리 부부에게 사랑을 베풀어준 문산본당 신자들이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에요』
문산본당측은 노부부의 딱한 소식을 접하고 우선적으로 봉사활동에 착수, 집을 수리하고 벽지며 장판 등도 발라주어 우선 이들이 기거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래서 지금은 그나마 생활은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딱한 사정은 박상심(모니카·73)씨도 마찬가지. 문산지역에 수해가 났을 당시 박씨의 집이 제일 먼저 물에 잠겼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두 딸을 어렵게 키워 출가시킨 그에겐 줄곧 불행이 뒤따르고 있다.
박씨는 이번 수해로 모든 것을 잃었고, 시집간 두 딸마저 병과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생활고 걱정보다 두 딸 걱정이 먼저 앞선다. 큰 딸은 벌써 5년째 합병증으로 몸져 누워 생명이 위독하고, 둘째 딸은 얼마전 남편을 사고로 보내고 어렵게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 두 딸 모두 넉넉치 못한 형편에다 이런 처지니 어머니 박씨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할 여유조차 없었다. 게다가 정부의 지원이란 것이 현실적으로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신앙이 없었다면 세상사는 의미가 없었을 겁니다. 저는 현재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고 그저 두딸이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길 기도드릴 뿐이예요』
아직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친척집을 저전하고 있는 박상심씨. 그도 96년에 이어 두 번째 수해를 당해 이젠 다시 일어설 여력마저 잃어버렸다. 이런 충격 때문에 박씨 자신도 수해 후 한달간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이 늙은 몸 하나야 어떻게든 살 수 있겠디만 두 딸과 손주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하지만 반드시 주님께서 이 불쌍한 자식들을 거두어 주실 것이라 믿어요』
이번 추석 명절이 어느해보다 잔인하게 기억될 김성숙씨와 박상심씨. 이들은 수마의 아픔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게 해달라고 매일 주님께 간절히 기도 그린다. 또한 이 땅에 수해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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