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기도
간간이 낮게 나는
새들만이 자유로운
이곳
그러나 이곳에도
희망은
자라고 있습니다.
늘 한결 같이
자리를 지키며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는 듯한
성모상 앞에 선
신자들의
낮은 기도 속에
휴전선 155마일의 동쪽 끝자락,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제5861부대.
자유와 조국의 평화통일을 상징하는 평화의 종을 부대의 상징마크로 택해 일명 뇌종부대로도 불리는 최전방 지킴이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막아선 곳.
북녘땅이 손에라도 닿을 듯 지척인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이 곳 ○○○GOP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와있다. 계절을 무색케 하는 폭우로 한치 앞도 가리기 힘든 철책선 앞을 묵묵히 헤쳐 나가는 초병들에겐 긴장감이 풍겨온다. 보이지도 않을 듯한 전방을 깊은 눈으로 주시하는 초병들에게선 잡념이란 느껴지지 않는다.
통일전망대에서 북녘땅 「침묵의 교회」를 내려다보며 간절한 기도를 보내고 있는 성모상 마냥 이들 초병들에게서도 간절함이 전해져온다. 조국에 대한 사랑, 분단현실에 대한 슬픔….
맑은 날이면 동해의 새파란 물결과 해금강의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곳. 고요함이 어색한 지 끊일지 모르고 남과 북을 오가는 심리전 방송들, 그리고 간간이 낮게 나는 새만이 이 곳에서 자유롭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의 아픈 현실이 어른 키 서너배 넘는 높이로 삼중 사중으로 쳐진 철조망과 「민간인통제선」「비무장지대」라는 어색한 간판. 그리고 뭔지 모를 등골 싸늘한 분위기로 와닿는 곳.
올 겨울을 굶주림과 추위에 날 북한 동포들의 뼈아픈 소식들이 긴장 속에 묻혀지고 마는 곳. 그러나 이 곳에서도 통일조국의 희망은 자라고 있었다. 마음이 닫혀있지 않은 따뜻한 군인들과 끊기지 않는 실향민들의 발걸음 속에서, 그리고 지난 86년부터 꼭같은 자리를 지키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는 듯한 성모상 앞에 선 신자들의 낮은 기도 가운데.
일주일에도 몇 차례, 헉헉대면서 찾게되는 휴전선 철책선, 그리고 제 이름 잃어버리고 숫자로만 나열된 ○○고지들. 반만년 역사의 십자가들 모두 진 양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맞는 어린 병사들. 이들에게 외부에서 온 이는 단조로운 일상을 끊는 딴 세상으로부터 온 희망의 존재다. 하물며 그가 마음의 위안자 일 때에는 병사들 가슴 한 곳에 눈물이 괸다. 반세기를 넘게 민족의 이름으로 남아있는 철조망을 녹일 존재는 이들이다. 뼈아픈 조국의 현실을 몸으로 살며 사랑을 키워갈 이들. 이들조차 우리 사랑의 울타리, 관심의 장에서 비켜나 있을 때 그 언젠가 하나되는 기쁨은 스러져 찾을 수 없게 될지 모를 일이다. 하느님을 마음에 품고자 하는 병사와 사랑으로 두손 따스하게 잡는 사제. 우리의 사랑이 부족한 곳에서도 사랑은 피어나고 열매 맺고 있다. 당신의 말씀대로 당신의 이름으로 둘셋이 늘 함께 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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