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안에서 그 사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한국천주교회의 무관심과 오해를 받아온 사건 중의 하나가 바로 안중근 의사 의거이다.
안중근 사건은 민족과 역사, 그리고 교회와 신앙 간의 관계 속에서 한국 교회가 깊이 성찰해야 할 역사적 사건 중 하나이며 최근 들어 상당히 빈번하게 조명되고 있지만 여전히 좀 더 깊은 성찰을 해야 할 사건이다. 왜냐하면 안중근 의사 의거에 대한 당시 제도교회의 평가는 곧 한국의 독립 운동에 대한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견해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중근의 의거, 그리고 그의 사상과 신앙에 대해 교회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79년. 안의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신앙과 애국심을 기리는 미사와 기념행사를 처음으로 거행했다. 9월 2일 고(故) 노기남 대주교 집전으로 명동성당에서 새롭게 인식한 공식 행사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이듬해 1980년에는 안의사 서거 70주기 추모미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후 6년 동안 뜸했고 1986년 3월 23일 서거 76주기 추모미사가 봉헌되면서 그의 생애와 사상, 신앙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일기 시작했고 안의사를 단죄한 한국천주교회의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곳곳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획기적인 전기가 된 것이 1993년 8월 21일 한국가톨릭문화사연구회가 한국교회사연구발표회 제100회를 맞아 가톨릭신문과 가톨릭문화선양회 후원으로 개최한 안중근 의사 학술 심포지엄이다.
민족사 앞에 친일 행각의 과오를 범했던 한국 천주교회에 올바른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은 이 심포지엄은 그동안 제도교회로부터 범죄자로 단죄받아왔던 안의사를 「복권」시켰다는데 큰 의미를 갖는다. 당시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김수환 추기경도 제도교회의 친일 행각에 대해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과오를 당시 제도교회가 범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의 자주와 독립을 빼앗은 일본인 이토를 살해한 사건은 비록 의거로 부르지만 안의사가 신앙인이라는 점에서 그의 애국적 행위가 천주교 신앙과 윤리면에서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당시 한국 천주교회는 그것을 살인죄로 단죄했다. 당시 프랑스 주교와 선교사들은 이 사건을 부끄러워했고 이 사실이 보도되기를 두려워했다.
당시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는 이토가 살해된 것은 공적인 재난인데도 한국인들은 기뻐하고 이토가 한국을 위해 많은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침략의 앞잡이로 오해하고 있다고 여겼다.
같은 맥락에서 뮈텔 주교는 안중근이 마지막 성사를 받기 위해 신부의 파견을 요청햇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했고 빌렘 신부가 주교의 거절을 무릅쓰고 안의사를 방문 마지막 성사를 준 데 대해 성무집행정지처분을 내리기까지 했다.
비록 로마에서 주교의 처사가 지나치다고 하여 빌렘 신부의 손을 들어주엇지만 이러한 일련의 조처들은 당시 한국천주교회가 한국민의 민족적 입장과는 상당히 유리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학술 심포지엄을 통해 안의사의 복권이 어느 정도 인정받고 매년 안의사를 기리는 기념행사들이 연이어 거행되면서 그의 사상과 신앙을 연구하는 저서와 논문들도 이제 낯설지 않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교회는 전체 교회 차원에서 정기적인 기념행사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러있다.
안의사의 의거에 대한 당시 교회의 태도 뿐만 아니라 한국 민족의 독립을 위한 노력과 투쟁에 대한 교회의 전반적인 반응에 대해서 이제는 냉정하고 깊은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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