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아침 희뿌연 새벽을 헤치고 동해를 굽이쳐 올라온 신자 일행을 맞은 것은 새벽 안개보다도 짙은 회색빛 장전항. 일순간 우리들 사이에선 조용한 탄식과 한숨같은 것이 쏟아져 나왔다. 푸르디푸른 모습으로 반겨줄 줄 알았던 북녘 땅은 외딴 시골 포구보다도 더 큰 쓸쓸함을 띠고 있는 듯했다.
서울대교구 강남가톨릭문화원(원장=오태순 신부)이 개원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나선 이틀간의 금강산 여정은 항구를 먼발치서 바라봐야 하는 애처로움을 머금은 가운데 시작됐다.
선상에서 새벽밥을 서둘러 먹고 나선 금강산 관광길, 북녘에서 맞는 첫 관문인 북한출입국관리소에 들어서서야 처음 만나게 된 북한 사람들. 단 이틀을 오가며 친해져 버릴 이들에게 첫날은 왜 그리도 긴장했는지….
금강산 첫 마을인 온정리, 단층 슬레이트 지붕이 대부분인 이 조그만 마을도 우리는 걸어 지날 수 없었다. 도로 양 옆으로 촘촘히 처진 철조망과 1㎞ 간격으로 선 북한 경비병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버스 안에서조차 손 흔들기가 꺼려지던 관광길. 그런 가운데서도 가을금강 풍악산은 한발한발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빽빽이 들어선 산자락 초입의 아름드리 미인송마저 아름답다기보다 쓸쓸함으로 다가오게 하는 금강산, 그러나 차에서 내려서자 금강산은 가슴 가득 뻐근한 감동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찾을 수 있는 외금강 11개 지역 중 장엄미와 씩씩함이 가장 돋보인다는 첫날 만물상 코스. 선녀와 나무꾼의 애틋한 사연이 서린 문주담, 물 한모듬 먹고 지팡이를 잊고 금강산을 오른다는 망장천 등 곳곳에 저설을 지닌 만물상은 1683m 비로봉을 중심으로 기암괴석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듯했다. 손에 손잡고 오른 금강산, 고리지르는 데마저 벌금이 매겨지는 산행길 내내 우리 마음속에서는 「주 하느님 크시도다」는 찬미가 흘러나왔다.
「수녀」라는 존재를 처음 대한 북측 안내원들과의 만남은 적잖은 웃음과 사연을 낳기도 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안변이 고향이라는 송씨 성을 가진 한 남자안내원은 우리와의 헤어짐이 섭섭한지 맞잡은 손을 좀처럼 놓으려 하지 않았다. 『통일되면 다시 만납세다. 꼭 기억하고 있까시오』오가는 남과 북의 한마디 한마디 말 가운데 우리 가슴에는 소중한 하나됨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다.
산을 내려와 온정각에서 새긴 또 하나의 기억, 국제교예대전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평양 모란봉교예단」의 공연은 통일에 대한 절절한 기원을 뇌리에 새기게 했다. 동포애의 심정으로 선보인 북녘 배우들의 기량은 남한 동포들에겐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안타까움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틑날 구룡폭포를 오르는 길은 새로운 감동으로 일행의 가슴을 뒤들어 놓았다. 구슬같은 맑은 물이 흐른다는 옥류동계곡을 거쳐 오른 구룡폭포, 그러나 우리 가슴엔 경치의 아름다움보다 통일에 대한 절실함이 더욱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이 마음들이 하나하나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겨질 때 북녘땅 「침묵의 교회」가 살아 움직이리라는 믿음 가운데.
매일의 산행을 마치고 선상에서 봉헌한 미사는 그 어느 때보다 절절함으로 다가왔다. 『남과 북의 바람이 「하나」라는 사실만 우리 가슴에 심고 돌아간다면 통일의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나 풍년의 가을걷이마냥 기쁘게 거둘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통일조국을 향해 움트기 시작한 희망, 이어지는 발걸음 속에서 양양-원산간 끊어진 17㎞ 철길을 따라 다시 금강산을 찾을 날을 기원하는 신자들의 낮은 기도가 힘있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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