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질이 차분하여 천막 안에만 머물며 어머니의 사랑을 받던 야곱이 느닷없이 방랑길로 들어서게 되었으니 얼마나 두려움이 컸겟으며 그 고초는 또 얼마나 심햇겠는가. 베델에서의 꿈은 그러한 야곱에게 타향살이의 고생을 견딜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주었다.
야곱이 드디어 하란땅에 도착하여 삼촌 라반의 딸 라헬을 우물가에서 만나게 된다. 야곱은 라헬을 껴안고 소리내어 울었다. 이제야 몸붙일 곳에 왔다는 안도감. 그리고 어머니의 혈육을 만난 반가움에 어찌 눈물이 안 나오겠는가.
삼촌 라반의 집에서 앞으로 7년동안 삼촌 일을 해드리는 대신 라헬을 달라고 청을 한 후 야곱은 라헬에게 장가들 생각으로 7년을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결혼 잔치 첫날밤, 라헬 대신 레아를 들여보낸 삼촌의 책략에 걸려 다시 7년을 더 머슴살이를 하게 된다. 야곱은 졸지에 일주일 간격을 두고 두 자매를 나란히 부인으로 얻게 된다. 이것은 야곱이 원해서가 아니라 삼촌 라반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면 성서에서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삼촌 라반이 사는 곳은 하란 즉 메소포타미아 지방인 이교지역이다. 그리고 고대 유목민 사회에서는 가족이 수를 최대한 늘리는 것이 생존을 위한 필연적 수단이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야훼께서 레아가 남편에게 차별대우를 받는 것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열어주셨다. 그러나 라헬은 아기를 잉태하지 못하였다』(29, 1).
레이와 라헬. 그녀들의 몸종들에게서 아들 열한명을 얻게 되자 야곱은 고향땅에 돌아가고 싶어 라반에거 청을 하지만 욕심많은 라반은 야곱에게 협상을 요구한다. 야곱은 이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자기의 재산을 확실하게 가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삼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었기 때문에 야곱은 열심히 일하면서 수완도 부려 과연 눈에 띄게 양떼를 불려나갔다.
라반이 야곱을 착취하였는지를 그의 딸들인 레아와 라헬의 마에서 알아볼 수가 있다. 『아버지 집에서는 우리에게 돌아올 몫을 더 바랄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마치 남처럼 여겼습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팔아먹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돌려주셔야 할 돈도 혼자 가로채신 거예요』(31, 14~15)
이리하여 야곱은 가족들과 남종, 여종, 가축과 양떼를 모아 야반도주하기에 이른다. 즉시 추격해온 라반은 야곱과 계약을 맺고 서로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서 돌아간다. 착취자는 끝없이 착취하려 든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은 착취당하는 백성을 보로하시고 단호하게 자기네 권리를 회복하게 해주신다.
야곱은 이제 라반의 손아귀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으나 산넘어 산이라고 형 에사오를 만나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저를 에사오의 손에서 건져주십시오. 에사오가 와서 어미들과 자식들까지 우리 모두를 죽여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32, 12) 어렸을 때처럼 심약한 야곱이 아니건만 자기가 형 에사오에게 한 잘못을 생각하니 그 후환이 몹시 두렵다. 형 에사오에게 선물을 보내면서 문안을 드리고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 가족과 모든 소유를 피신시킨 다음 혼자 뒤떨어져 있을 때 어떤 분이 나타나 동이 트기까지 그와 씨름을 했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야곱의 극심한 시련의 상황을 말해준다. 긴장 불안 초조의 연속에서 어떤 정체모를 힘과 정면 승부를 거는 투쟁을 벌인다. 죽을 힘을 다하여 밤새 겨루다가 야곱은 끝까지 그의 축복을 받아내고서야 물러선다. 상대는 이 용감무쌍한 청년의 이름을 물어보고는 야곱을 아스라엘이란 이름으로 바꾸어준다. 이스라엘이란 새로운 이름은 아브라함처럼 새로운 사명과 삶으로의 초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야곱은 더 이상 남의 땅에서 방랑하는 삶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사악에게 주신 그 축복의 상속자로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그날 이루어진 에사오와의 상봉은 의외로 에사오의 관대함이 드러나고 옛날 일을 잊고 혈육의 만나는 기쁨이 강조된다.
인간 누구나가 살아가면서 일생에 한번쯤 이런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야곱과 같은 투지로 적극적인 삶의 자세로 싸우는 것이 필요함을 보게 된다. 야곱이라는 인물상은 아브라함이나 이사악과는 다른, 꾀가 많고 적극적이며 불리한 상황을 능동적으로 대처해가는 불굴의 인간승리자 같은 인상을 받는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 같은 의인을 기뻐하시지만 또 야곱과 같은 모순을 지닌 인간도 도구로 사용하심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야곱의 생애가 자기네 백성의 운명과 흡사한 것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사실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으로서의 또 하나의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야곱이 곤경중에 하느님의 도우심을 입었듯이 우리도 어려움중에 하느님을 부르고 그분의 도우심을 청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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