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이야기에 이어 창세기의 마지막을 이루는 주인공 요셉이 등장한다. 어떤 소설 못지않게 흥미와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가 전개된다. 애처 라헬의 소생이었기 때문인지 야곱은 이 아들을 유난히 귀여워하여 요셉은 형들의 질투를 샀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 말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다 똑같다는 뜻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아롱이 다롱이라고 다 다르게 생긴 자식들이니 부모 마음도 다르게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도 같은데 어쨌든 야곱의 요셉에 대한 편애는 좀 지나쳤던 것 같다. 특별히 장신구를 단 옷을 지어 입혔다는 것은 그만큼 눈에 띄고 돋보였다는 뜻이다. 남보다 특별하고 돋보이기를 바란다는 것은 평탄치 않은 삶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편애로 상처를 입은 형들은 아버지보다 요셉을 더 미워하게 된다. 요셉은 꿈을 잘 꾸곤 하였는데 철없이 꿈 이야기를 형들 앞에서 하게 된 것이 더욱 결정적인 미움을 사게 된 원인이었다.
형들이 묶은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에 절을 하고 해와 달과 별 열하나가 자신에게 절을 하더라는 꿈 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그야말로 하극상의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형들이 집에서 100㎞나 떨어진 세겜 들판으로 양떼를 몰고 나갔을 때에 요셉이 형들을 찾아왔다. 형들은 아버지가 안계신 들판에서 요셉을 없애버릴 궁리를 한다. 그래도 죽이지 말자는 큰 형 르으벤의 제안에 따라 옷을 벗긴 후 물없는 구덩이에 처넣어버린다.
형제들이 밥을 먹고 있는 동안 그곳을 지나가던 미디안 상인들이 그를 끌어냈고, 고급 향료를 에집트에 가져다 파는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요셉을 은전 20냥에 팔아 넘겼다. 인신매매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스마엘 상인들은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들이며 레위기 27,5을 보면 20세 이전의 남자노예의 몸값이 20냥이라고 나온다. 순식간에 요셉이 없어진 것을 알게된 르므벤과 형제들은 놀랐으나 애초에 일을 꾸미려했던대로 요셉의 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 아버지에게 보내며 전하는 말을 보자. 『이것이 아버지 아들의 옷인지 아닌지 잘 보십시오』「아버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속에 자기들 동생에 대한 애정이 하나도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한편 이스마엘 상인들은 요셉을 에집트로 데려와서 파라오의 신하 보디발에게 팔아넘겼다. 보디발은 요셉이 무슨 일이든지 잘하는 것을 보고 그를 심복으로 삼고 집안의 모든 일을 맡겼다. 성서의 표현은 『야훼께서는 요셉을 보아 그 에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겼다. 야훼의 축복은 집과 밭뿐 아니라 그에게 있는 모든 것 위에 내렸다』(39, 5). 보디발 집안에 복덩어리가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요셉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요셉은 깨끗하고 잘생긴 사나이여서…』(39, 6). 아마 어머니 라헬의 미모를 닮았던 모양이다. 인물이 좋은 사람은 그만큼 유혹의 손길도 많다. 보디발의 아내인 주인 마나님이 유혹을 했는데 요셉은 하느님께 죄가 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주인에 대한 충성 때문에 끝까지 거절하였다.
『이 집안에선 제가 그분보다 실권이 더 있습니다. 마님에 관한 일 이외에는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짓을 제가 어떻게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느님께 죄가 됩니다』(39, 9)
요셉에게 아마 출세에 대한 야망이 있었더라면 기다렸다는 듯이 좋은 기회로 잡아 역이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나님의 손에 잡힌 겉옷을 그대로 둔채 뿌리치고 도망을 나왔다. 어려서 장신구 달린 옷은 형들의 손에 벗겨져 죽은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이번엔 주인 마나님 손에 의해 벗겨진채 또한번 사회적인 죽음의 곤경에 처하게 된다. 거절당한 마나님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적반하장으로 요셉을 중상모략한다.
『당신이 데려온 종녀석이 나에게 이따위 짓을 했단 말이예요』하고 남편에게 오히려 책임을 전가한다.보디발은 화가 나서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다. 사실 종의 신분으로 주인 마나님을 범하려 했다는 것을 사실대로 한다면 요셉은 사형감이다. 그러나 평소 요셉의 충직성을 감안해서인지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그친다.
그 감옥은 왕의 죄수들이 갇히는 곳으로서 후에 왕의 시종장들의 해몽을 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파라오 왕앞에 나가게 되었으니 감옥은 요셉에게 있어 전화위복의 장소인 셈이다. 감옥에 있을 때도 하느님은 요셉을 돌보아주신다. 간수장의 눈에 들게된 요셉은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들을 맡아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요셉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잘되게 해주셨다.
아버지의 편애로 인해 노예로 팔려왔으나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편애가 그와 함께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인간의 안정과 평화와 성공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온갖 좌절과 절망을 겪게하시고 그순간에도 함께 하시는 당신을 발견하도록 교육시키는 하느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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