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석양을 좋아합니다. 이제 나의 인생은 그렇게 고향길 가까이 와 있습니다. 걸어온 과거를 돌이켜보면,사람들은 아마도 내게는 자랑할 것이 많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오히려 뉘우치고 통해애햐 할 일들이 많습니다』(「나는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중)
한국교회는 물론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한평생을 살아온 김수환 추기경이 추기경 서임 30주를 맞아 명상록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과 신앙고백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를 펴냈다. (신치구 엮음/사람과 사람/각권 302쪽/7800원).)
김추기경은 이 두 권의 책에서 「추기경」이라는 직함이 풍기는 권위와 위엄에 가려진 인간적 풍모, 즉 인간존재의 나약함으로 인해 한 성직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충실히 살아오지 못했는가를 솔직히 토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예수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자기고백, 예수와 닮은 사제로 살아오지 못했다는 자기반성, 그리고 이웃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지 못함을 질책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의 추기경의 면모를 살피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총 32편의 글이 실여 있는 명상록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에서 추기경은 가족사랑, 고통, 화해와 용서,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 나눔의 미덕, 존재의 자리매김과 인생의 근원 등 우리들이 반추해야 할 삶의 가치와 덕목에 대한 인생철학을 담담하게 피력한다. 책에는 방대한 분량의 신앙일기가 수록돼 가감없는 추기경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신앙고백록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에는 그의 신앙적 삶, 신학적 깊이가 드러난 36편의 글이 실려 있다. 구체적인 신앙생활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성서에 담긴 갖가지 비유의 지혜를 설명하는 동시에 21세기를 눈앞에 둔 한국천주교회의 미래상을 제시한다. 신앙인으로서의 올바른 실천적 자세가 무엇인지를 성찰하면서, 다시금 신앙은 『끊임없는 연습이며 훈련』이라는 추기경의 화두에 누구든지 동감할 것. 김추기경이 직접 지은 기도문과 그의 48년간의 사제생활 어록 또한 담겨 있다.
한편 이 택에는 갖가지 일화가 실여있어 읽은 이들에게 작은 재미를 전해주기도. 70~80년대 격동기에 교회 안팎의 힘든 사정으로 교황에게 사임장을 섰다가 찢었다는 일화. 본당 주임시절 45세 이상 되는 가정부를 두어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을 좇으려 했지만 25세인 젊은 가정부를 두어 곤혹스러워 했다는 이야기, 두 살 터울인 형님(故 김동한 신부)과의 끈끈한 형제애와 사망할 당시의 괴로움 등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사연들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있다.
또한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두 번에 걸쳐 교황 선거에 참여하며 겪은 일,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잘못 평가해 온 한국 가톨릭교회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자성,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에 맞서 항의성명서를 발표하려 했다는 이야기, 6·29 선언이 발표되기 1년 전인 1986년 노태우 당시 여당 대표와 나눈 대화 등 격동의 세월을 살며 엄청난 운명에 맞서야 했던 그의 인간적 고뇌의 일단을 엿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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